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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언론의 열기에 놀랐다. “5개 팀의 K팝 전사들이 3시간30분 동안 44곡을 라이브로 소화하면서 열정의 무대를 만들었다”는 보도처럼 피눈물 나는 훈련을 거친 한국의 소년 소녀그룹들이 전투수준의 체력과 재능을 쏟아 부은 공연이었다. 방송드라마 수출에서 시작된 한류의 열기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확장되고 있으며, 한국의 수출 품목이 자동차와 전자상품을 넘어 이제 문화에까지 도달했다는 해외 언론의 평가도 거듭 인용되었다. 한류열풍의 중심에 선 ‘문화상품’에 대한 축하 일색이다. 기획사 설립자가 “그동안 대중문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꾸준히 쌓아온 체계화된 기술을 문화 테크놀러지로 정립한 것”이라고 성공비결을 밝히는 장면과 “유럽의 열기와 환호를 ‘한국방문의 열기’로 이어가겠다”는 한국정부의 발표도 TV전파를 탔다. 케이팝 아이돌 특유의 역동적인 춤과 노래가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뉴미디어의 파급력 덕을 톡톡히 봤다는 것도 지적되었다.
그런데...그런데, 뭔가 2퍼센트 허전하다. 파리의 관객들은, “노래도 너무 잘하고 열심히 공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국 팝과 비슷하지만 좀 달라서 좋다”, “이런 식의 능력을 가진 엔터테이너들은 프랑스엔 없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3년에서 7년간 춤, 노래, 연기, 외국어를 익힌 뒤 살인적 경쟁을 통해 데뷔한 이들 공연의 완성도는 인증 받았다. 하지만 이번 파리의 성공을 거쳐 전 세계로 뻗어갈 수 있을까? 그 다음에는?
문화적 편식과 유행의 쏠림이 유난히 극심한 한국사회에서 문화기자로 평생 살아온 나는 잔걱정이 많다. 물론 대중적 열광의 대상이 이번처럼 조직적으로 자본과 인력과 전방위적 지원으로 이어진 성공사례를 많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일시적인 대중취향의 패션트렌드와 문화적 비전의 메가트렌드는 구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대중문화든 사회현상이든 현재의 붐을 중장기 트렌드로, 미래 문화의 중심으로 발전시키려면 잘 제조된 문화상품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으로 10년, 20년 문화지평을 확 바꾸어놓을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한다. 한때의 현상을 지속가능한 트렌드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들의 세계관을 한계 짓는 감정적 요소가 실제 세계의 냉엄한 현실과 다른 가상의 소우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유행의 승리가 내 취향과 꼭 맞아 떨어질 때면 “세계를 정복했다”든가 “새로운 트렌드의 히트작”이란 신앙을 가져버린다. 몇 년 동안 고만고만한 현상들 중의 하나였다가 국영TV나 대형신문에 일제히 뜨면서 트렌드화하는 현상은 어느 나라에나 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