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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늘의 물건을 훔치는 도적 [금장태]

문근영 2011. 10. 27. 07:39

제 244 호
하늘의 물건을 훔치는 도적
금 장 태(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1553년 명종(明宗)임금 때 초야에 은거하고 있던 명망 높은 선비 세 사람을 발탁하여 관직을 내렸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남명(南冥 曺植)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때 퇴계(退溪 李滉)는 남명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높은 지조를 칭찬하면서, 그에게는 반드시 공부한 바가 있을 것이요,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요, 지키며 편안히 여기는 바가 있을 것이요, 남들이 모르는 가슴 속의 즐거워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 하여, 어떻게 해서 자신을 수립하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추구하고 있는 영예와 이익의 출세 길을 잊을 수 있는지를 겸손하게 물었다.

이때 남명의 답장에서는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공허한 명성으로 세상을 속이고 임금을 그르쳤다고 겸허하게 자책하면서,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오히려 도적이라 말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랴”라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하늘의 물건’이란 나라의 공직(公職)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신이 공직을 담당하여 그 책임을 다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자신의 사사로운 영예나 이익을 위해 ‘하늘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요, 하늘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 인식하는 두려움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자가 진짜 '도적'이냐!

남의 물건이라면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가진다면 그것은 훔치는 것이나 빼앗는 것이니, 모두가 도적이나 사기꾼으로 손가락질 할 것이요, 누구나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을 안다. 그런데 공공의 기물은 함부로 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고, 공공의 재물은 마치 임자 없는 물건을 주워 가지듯이 기회만 있으면 빼내어 갖거나 남에게 선심 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이른바 공직사회의 부패와 비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대기업에서도 부패와 비리가 심각한 문제로 제시되고 있는 사실이 보인다.

공공의 직책은 모든 백성의 삶에 직접 연관되는 것이므로 중대한 책임이 따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책임의식 때문에 공직을 맡기 두려워 한다는 것은 고위공직자의 취임사에서나 입에 발린 말로 나올 뿐이요,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줄을 서거나 뇌물이 오가는 온갖 공작을 다하는 인사들도 많다고 한다. 공직에 나와서도 자리를 지키고 이권을 챙기는 데만 마음을 쓰니, ‘철밥통’이라거나 ‘복지부동’이라는 비난과 빈정거림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임용권을 가진 사람조차도 자신과의 연고를 따라 세력을 심기에 급급하여 그 역량과 책임감을 엄격하게 검증하지 않는 일이 많으니, ‘하늘의 물건’에 대한 두려움을 찾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공직이란 두려워해야 할 ‘하늘의 물건’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는 물건이요, 아무나 운이 좋아 차지하고 앉으면 임자가 되는 ‘회전의자’쯤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공직에 나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책임을 다하지 않고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급급한 자들을 ‘도적’으로 꾸짖는 엄중한 질책의 목소리를 다산에게서 쟁쟁하게 들을 수 있다. 다산은 「감사론」(監司論)에서 어떤 자가 정말 ‘도적’인지부터 따졌다.

밤중에 남의 집 담을 넘어 물건을 훔쳐가는 절도범은 ‘도적’이 아니라 굶주린 자들이 배고픈 나머지 저지르는 짓이라 하였다. 흉기를 감추고 길목에 기다리고 있다가 길가는 사람의 재물을 빼앗고 그 사람을 죽여 증거를 없애는 살인강도조차 ‘도적’이 아니라 단지 실성하여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자의 소행일 뿐이라 하였다. 병장기를 든 채 수십 명의 무리를 이끌고 부잣집을 약탈한 다음 불을 지르는 화적떼도 여전히 ‘도적’이 아니라 단지 배우지 못하고 오만한 자들일 뿐이라 하였다.

"큰 도적 없애지 않으면 나라가 무너질 것!"

이렇게 좀도적에서부터 살인강도와 화적떼까지도 ‘도적’의 축에 넣을 수 없다면, 정말 흉악한 ‘도적’은 누구라는 말인가? 관인(官印)을 차고 한 고을을 차지하여 굶주리고 지친 백성들의 고혈(膏血)을 짜내는 고을 수령은 그래도 ‘작은 도적’이라 하였다. 정말 ‘큰 도적’은 큰 깃발을 세우고 큰 일산(日傘)을 받치며 큰 북을 치고 큰 나팔을 불면서 행차하는 감사(監司)를 지목하고 있다. 이 ‘큰 도적’은 아무도 억제하지 못하는 권력으로 온갖 이권을 누리는 자들이다. 여기서 다산은 “큰 도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 죽을 것이다”라고 절규하고 있다.

조선사회의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을 얼마나 혹독하게 착취했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부패한 공직자의 파렴치한 행실이나 나라의 기강과 백성의 삶을 해치는 것이야, 조선시대의 옛날이야기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우리 시대에도 ‘큰 도적’은 지위가 높고 권력이 큰 자리를 차지한 자들 가운데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한가 보다. 회계장부를 조작하여 몇 십억의 공금을 빼돌리는 은행창구의 간 큰 직원이야 ‘작은 도적’이라 해야겠다. 한 은행의 경영자들과 이들을 감독하고 감시하는 권력기관의 간부들이 한 통속이 되어 은행을 통째로 말아먹는 사건이 터져 나왔다. 뉴스의 화면에서 그 은행에 예금을 했던 서민들의 투박하고 절망적인 몸짓을 보면서, 진실로 가증스러운 ‘큰 도적’들은 오늘 날에도 여전히 높은 자리에 앉아, 기품 있는 차림새를 한 인물들 속에 숨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다산이 지금 우리 사회를 내려다보면서 “큰 도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라가 무너질 것이다”라고 질책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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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금장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저서 :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 이끌리오, 2005
         『한국의 선비와 선비정신 』,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유학의 탐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퇴계의 삶과 철학』,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다산 정약용』,살림, 2005
         『다산 실학 탐구』, 소학사, 2001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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