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고 싶은 법정스님의 글

[스크랩] 문장과 인격 - 법정 스님을 보내며

문근영 2011. 9. 21. 08:00

참 좋은 자료와 볼거리가 있는 카페입니다. 감사의 뜻으로, 제가 몸담고 있는 성공회의 교단신문에 실었던 글을 옮깁니다.

스님의 생각과 삶을 추모하고 따르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법정 스님께서 돌아가셨다. 나는 이 한 문장만 써 놓고 한참동안 다음 문장을 잇지 못했다. 알지도 못하는 타종교의 스님이 돌아가셨는데, 왜 내 시간이 멈추는 것일까? 숱하게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무상한 기분이다.

 

나도 오래전에 그분의 책 『무소유』를 읽었다. 내가 그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나도 이제 무소유의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 아니었고, 나도 언젠가 이분처럼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도전의식이었다. 나는 그분의 종교나 인격이나 메시지보다 그분의 문장에 매료되어 있었고,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 했던 나는 소유사회의 일원으로 잠시 방송작가도 했고 오랫동안 논술교사를 했다. 내가 했던 직업은 모두 글쓰기와 관련이 있었지만, 그분의 문장과는 멀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더 이상 내 운명을 정부의 교육정책의 변동에 맡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전국을 누비며 수입도 괜찮았던 대입논술강사직을 그만 둔 것이다.

 

무언가를 내려놓다는 것이 아마 그런 것이리라. 기분이 좋았고 갑자기 뭔가 깨달은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문득 잊고 지내던 꿈이 되살아났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 닮고 싶어 했던 ‘문장의 추억’이 떠오른 것이다. 노신(魯迅), 이영희, 함석헌, 정운영, 장일조, 황지우, 정채봉, 김훈… 시기를 달리하며 내 눈에 들어왔던 분들의 이름이 지나갔다. 그런데 이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법정 스님은 좀 달랐다. 쉬움과 깊음. 스님은 좋은 문장의 두 덕목을 완벽히 갖추셨다.

다시 『무소유』를 꺼내 보았다. “미리 쓰는 유서”라는 글도 있었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 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 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 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茶毘(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스님의 잡문집 『무소유』는 대개 1971년 전후에 쓴 것들이다. 세속의 나이로 삼십대 후반, 어떻게 이런 문장이 가능했을까? 스님은 40년 이후에나 다가온 입적을 그 때 이미 준비해 놓으셨다.

 

나는 요즘 최초의 저서가 될 책의 원고를 다듬고 있다. 교회건축에다 할 일은 많지만, 문장을 다루는 일은 즐겁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가져왔던 꿈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스님께서 남기신 말씀이 내 앞을 막아선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유언 중에서)

출판사에서는 내 글이 좋다면서 책을 내자 하지만, 스님이 돌아가시며 하신 한 말씀이 나를 작게 만든다. 평소에도 나무보다 못한 책들이 많다고 생각해 온 내가 그 짓을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내가 이렇게 고민에 빠진 것은 나의 문장력 때문이 아니다. 문장은 많이 좋아졌으나 삶이, 내 삶이 여전히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내가 진정으로 흠모했던 것은 스님의 문장文章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人格이었다. 약간의 재문才文으로 수행修行의 인격을 대신할 수 없다.

 

스님도 아실까? 종교는 달라도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스님 덕분에 하느님을 더욱 깊이 깨달음을. 예수님과 부처님이 글을 남기지 않았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은 오늘, 깊어가는 밤하늘에 별빛 하나 사라진다. 

 

이한오 신부(프란시스, 성공회 춘천교회)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215한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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