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다산과 4.19혁명[박석무]

문근영 2011. 9. 7. 08:28

다산과 4.19혁명

까까머리 고등학생으로 “부정선거 다시 하라!” “대통령은 하야하라!”라는 등의 구호를 목이 터지라고 외쳤던 그 날이 벌써 51주년을 넘겼습니다. 1960년 4월19일, 오전부터 저녁까지 동료학생들과 스크랩을 짜고 구호를 외쳐대며 거리에서 뛰고 달리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다산이 태어난 해는 1762년이었으니, 다산 탄생 200년이 다 되어서야 다산의 탁월한 정치 이론이 현실화된 사건의 하나가 다름 아닌 4.19혁명이었습니다. 맹자(孟子)의 방벌(放伐)논리는 2000년이 넘어서도 그대로 적용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잘못하는 군주나 통치자는 백성의 힘으로 추방할 수 있다는 다산의 「탕론(湯論)」에 나오는 방벌사상은 200년이 못되어 한국의 4.19혁명에서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다산은 30대 중반에 최초이자 마지막이던 목민관(통치자)의 지위에 올라,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쥐고 황해도 곡산부(谷山府)라는 고을을 다스린 적이 있습니다. 앞전 곡산부사의 악정(惡政)에 1000여 명의 농민을 이끌고 항의시위를 주동했던 이계심(李啓心)이라는 농민지도자를 재판할 때 다산이 작성한 판결문의 주문과 판결이유에서 다산의 뛰어난 통치철학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문은 “무죄 석방한다”였고, 그 판결 이유는 “관(官:목민관·통치자)이 밝은 정치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백성들이 자신들의 몸보신하는 데만 꾀가 많아, 잘못된 정치에 대하여 통치자에게 항의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계심은 항의를 했으니 죄를 주기보다는 크게 칭찬해주어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조선시대, 18세기의 봉건왕조시대에, 다산은 잘못하는 군주나 통치자에게 백성들이 항의하고 질책하면서 투쟁해야한다는 뜻을 밝혔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추방해야 한다는 맹자의 방벌론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다산의 「탕론」과 이계심에 대한 재판의 판결문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다산의 국민저항권의 실현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최초이자 훌륭하게 발휘했던 때가 바로 4.19혁명이었습니다. 헌법을 유린하고 영구집권을 시도하던 자유당정권, 천하에 없는 부정선거로 국민주권을 탈취한 이승만 정권에 어린 고등학생들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젊은 학도들이 들고 일어나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외국으로 퇴출시켜버렸던 4.19혁명은 바로 다산의 뜻을 이어받은 민주학생들이 이룩한 위대한 혁명이었습니다.

민중의 힘으로 추방된 독재자는 특정 정치집단이나 특정 세력에 의해서 권좌를 빼앗긴 것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특정 정치집단이나 특정 세력은 역사의 변천이나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으나, 민중의 힘으로 이룩된 혁명은 평가를 달리할 방법이 없습니다. 독재자에 대한 새로운 가치부여의 시도나 허튼수작은 그래서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을 다산이 가르쳐주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박석무 드림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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