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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윤형의 명품 글씨[김문식]

문근영 2011. 9. 11. 10:33

제 191 호
조윤형의 명품 글씨
김문식(단국대 사학과 교수)

조윤형(1725~1799)은 정조 대에 명필가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그는 1780년에 상의원 주부로 발탁되면서 벼슬길을 시작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책 제목을 쓰는 일이었다. 『고금도서집성』은 1728년에 북경에서 완성된 책으로 분량이 1만 권이나 되고, 부(部)와 목(目)의 구분이 정밀하며, 상세한 그림이 함께 수록되어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유서(類書)였다. 이 책은 정조가 즉위한 직후에 북경으로 파견된 서호수가 거금을 주고 구입했고, 조선식 제본으로 5,020책을 만들어 규장각의 개유와(皆有窩) 건물에 보관했다. 어명을 받은 규장각의 검서관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서이수가 책의 부와 목을 일일이 베껴 별책으로 만들었고, 조윤형은 “圖書集成” 네 글자를 5천 번이나 써서 책 제목을 완성했다. 제목을 쓰는데 소요된 시간은 40여 일이나 되었다. 이후로 조윤형에게 네 글자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명품글씨가 빛을 발한 사도세자 묘소의 현륭원지

조윤형의 다음 임무는 정조 어진(御眞)의 표제를 쓰는 일이었다. 1781년에 정조는 규장각에 자신의 어진을 보관하고 신하들이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이를 살펴보는 의식을 만들었다. 현 국왕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게 하는 의식이었다. 정조는 어진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조윤형에게 현장에 배석하도록 했고, 어진이 완성되자 초본의 표제 글씨를 쓰게 했다. 이것은 정조가 조윤형의 글씨를 매우 좋아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조윤형의 명품 글씨가 확실하게 빛을 발한 시기는 현륭원의 지문(誌文)을 썼을 때이다. 정조는 1789년에 천하의 명당지라는 화산 아래에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을 조성했다. 현륭원 조성은 정조가 왕위에 오른 이후 13년 동안 준비해 온 일을 실행한 것이다. 이 때 정조는 현륭원 지문까지도 직접 작성했다. 사도세자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정조의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글이었다. 정조는 사전에 사도세자의 행적과 관련된 자료들을 치밀하게 조사했고,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지문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정조는 조윤형에게 지문의 필사를 맡으라고 명령했다. 조윤형의 글씨에 대한 정조의 평가가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조윤형은 지문 글씨를 쓸 때 한 번에 몇 글자씩 여러 번 나누어 써서 올렸고, 이를 하나로 합하여 최종본을 만들었다고 한다. 글씨를 쓰는 사람조차도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없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정조는 지문을 새길 때에도 종이로 덮어 놓고 한 글자씩 새기게 하여 내용을 알 수 없게 했다.

<춘추>의 원문을 큰 글자로 쓸 사람 누구냐

조윤형의 마지막 작품은 1797년에 편찬된 『춘추좌씨』의 원문을 필사한 것이다. 정조는 왕위에 있는 동안 『춘추』에 나오는 대일통(大一統)을 강조했다. 이는 천하를 하나의 통일된 질서 아래에 편제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국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정조는 만년에 『춘추』의 정본을 간행하면서, 『춘추』의 원문을 강(講)으로 하고, 「좌씨전」을 목(目)으로 하는 강목체의 방식을 채택했다. 원문과 주석을 강목체로 편집한 것은 세종 대에 간행된 『자치통감강목』의 방식을 따른 것이다. 문제는 『춘추』의 원문을 큰 글자로 쓸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이었다. 정조는 『춘추』의 원문을 조윤형에게 쓰도록 했다. 그의 글씨가 명품이기도 했지만, 그의 고조부인 조한영이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고 청나라에 끝까지 저항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간행되었을 때 조윤형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정조는 새로 간행한 책 한 부를 그의 집으로 보내면서 추모시 한 수도 함께 지어 보냈다. 다음은 정조가 조윤형을 위해 지은 시이다.

성인(聖人)의 필법으로 『춘추』를 지어 놓으니
유학의 도가 조선으로 와 해와 별처럼 빛난다.
큰 글자로 특별히 쓰는 새로운 범례 만들었더니
문충공의 손자(조윤형)가 글씨를 얼마나 썼던고.

이를 보면 조윤형은 정조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았던 명필가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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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문식
단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저서 : 『조선후기경학사상연구』, 일조각, 1996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문헌과해석사, 2000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정조의 제왕학』, 태학사, 2007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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