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마비

선찰대본산 금정산범어사 조계문 보물 제1461호 2006.02.07 지정

조계문. 네기둥은 160cm의 배흘림 석주를 세우고 그위에 79cm의 목주를 세웠다.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 1835∼1919)
1862년 정시문과에 급제해, 성균관대사성, 전라도관찰사, 규장각직제학, 홍문관제학, 이조판서, 예조참판.
전라도관찰사. 법부대신, 탁지부대신 등을 지냈다. 특히 청렴 결백한 성품과 함께 당대 명필로 이름이 높았다.


사천왕상의 요대

神光不昧萬古輝猷 싱그러운 광명이 만고에 빛나니 東山慧日書
入此門來莫存知解 이 문을 들어서면서부터는 세상의 알음알이를 논하지 말라.

보제루의 금강계단 편액 석동산 1963 초하

삼층석탑

괘불석주

석등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불법을수호하는 서수

대웅전 보물 제 434호 1966.02.28 지정. 목조 수기삼존불 보물 제1526호 2007.09.18 지정

대웅전 소맷돌. 측면에는 동백꽃이 활짝피었다.

摩訶大法王 (진리의 왕이신 부처님은). 無短亦無長 (길고 짧은것도 없으시고)

本來非皀白 (본래 그 모습이 희지도 검지도 않지만). 隨處現靑黃 (때에 따라 푸르게도 누르게도 나타 나신다)

동치(同治) 원년인 조선 철종 13년(1862)에 봉안하였던 금구는 성보관에, 현재는 2002년에 조성한 금구가 걸려있다.

대웅전 측면 방풍널 아래 벽면에 어렴프시 흔적만 남은 흰범과 학. 흰 사슴 벽화

대웅전 측면 3칸. ★정면 3칸 四柱중 좌우의 귀기둥은 둥근석주(150cm)를 세우고 그 위에 둥근 목주(170cm)를 세웠다.

관음전 편액아래 도깨비화반 성파 하동주(星坡 河東州) 1865∼1943

관은전 측후면. 청기와 지붕으로 용마루와 내림마루에 서수 10 마리가 얹혀 수호하고 있다.

관음전 용마루와 내림마루에 서수

1865∼1943.jpg)
범종루 성파의 종루 글씨의 보전상태가 세월의 !!! ??? 무지의 !!! ???

금정산 범어사 목어

비로전 미륵전 영주선제문

미륵전 목조미륵불좌상. 목조 미륵불은 아미타여래의 수인을 하였는데 불단이 서쪽을 향하고 있다.

영주선제 대문 빗장

심검당(원주실) 측면외벽화 거북이

한지붕아래 팔상전, 독성전, 나한전을.. (정면7×측면 3칸, 주심포, 맞배지붕, 1906년 중건)

건물 중앙의 독성전. 현관처럼 이중형태의 창호없이 아치형 문틀을 구성하였는데
원주와 반원형과 창방사이에 화려하게 뭉실뭉실 탐쓰럽게 핀 모란 각슈와 남여상. 분합 내문에 소슬빗 꽃살창호




나한전 천정에는 卍字. 壽福. 蔓. 花 등으로 화려하게 수놓아졌다.

함흥당 종무소 입구의 육화행요 청남 오제봉 73지작 1980년書. 청남 오제봉(菁南 吳濟峰) 1908~1991.

범어사 성보박물관. 2003년 3월 26일 개관

석조-1

석조-2

당간지주

담장

소각장

일본 서예가들이 이 글씨를 보려고 방한하였다는 금정산 범어사 표석은 현재 누워 있다. ↕



혁신범어사 선찰창건주 성월당일전 자연암반 와비
성월 일전 (惺月 一全)대사 1871∼1943. 경남 양산 출생 속명은 오창호(吳昌昊).

백용성(白龍城 1864∼1940) 조사는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 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며
불교계 대표로서 1864년 5월 8일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 252번지에서 출생.
범어사 용성 辛巳 1941年 위창 오세창撰, 동산혜일書. 2001 辛巳 주지 목우성오.


금정산 범어사 부도군

범어사기석표. 금정산 고당봉에서 장군봉 방향으로 가는 등산길옆에 누워있는 범어사 사역표지석
금정산 범어사 금정구 청룡동 546
범어사는 창건 이후 고려와 조선 중엽에 이르기까지 그 면모를 유지해 오다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의 병화을 만나 모두 소실되어 10여년 동안 거의 폐허나 다름이 없었는데
선조 35년(1602년)에 관(觀) 선사가 중건하였으나 얼마있지 않아 또 다시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그 후 광해군 5년(1613)에 묘전(妙全) 스님 등이 대웅전, 용화전, 관음전, 나한전, 일주문, 심검당(현 원주실)을 건립.
1684년에는 해민(海敏) 화상이 비로전을, 1700년에는 명학 화상이 팔상전, 종루, 불이문, 보제루, 천왕문을 건립.
근세의 고승인 경허 스님은 1900년에 범어사에 선원을 개설하였다.
그의 영향을 받은 범어사 주지 성월 스님은 1899년 범어사 금강암에 선원을 창설하고
다음해에는 안양암에, 1902년 4월에는 계명암에, 1906년 6월에는 원효암에, 1909년 1월에는 안심료에,
1910년 10월 대성암에 선원과 선회를 창설하여 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복사.jpg)
★ 巡相國趙公嚴革祛寺弊永世不忘壇 ★
우리나라에 고구마가 처음들어온 것은 조선시대 영조 39년(1763년) 10월로 그 당시 일본에 통신정사로 갔던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보고 이것이 구황작물로 중요한 것으로 여겨 씨고구마를 구하여 부산진으로 들여온
것이 처음이었고 이듬해 조엄이 귀국길에 다시 씨고구마를 구해서 동래지방 및 제주도에 심도록 한 것이 시초였다.
★낙안선사 낭백수좌(浪伯首座).만행수좌(萬行首座).
낭백수좌에 관한 설화로서,
조선 중엽에 이르러 불교의 박해는 그 극에 달하는데,
사찰에 부여된 부역의 수가 무려 30종에서 40종에 이르렀다고 하는 기록이 전한다.
종이, 붓, 노끈, 짚신, 새끼, 지게 등 그리고 특수 곡물 등 온갖 농작물에 이르기까지
범어사에 철마다 부여된 부역의 수만도 36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무렵의 승려들은 자신들의 공부는 전혀 돌아볼 겨를도 없이
오로지 일생을 나라에서 부과된 부역에 종사하기도 바쁜 나날이었다.
낭백 스님은 이러한 당시의 사정을 뼈아프게 개탄하시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 부역만은 면하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설사 금생에 안되면 내생에라도 부역을 면하고 마음껏 공부할수 있게 하리라 마음먹고 원력을 세웠다.
금생에는 복을 많이 지어서 내생에는 나라의 고급관리가 되리라.
그리고 그 관리의 특권으로 범어사 스님들의 부역을 혁파하리라." 하고
그 날부터 힘이 닿는 대로 복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지금의 기찰 부근 그러니까 동래를 들어가고 나가는 길목 큰 소나무 밑에 샘물을 파서
행인들에게 식수를 제공하고, 넓은 밭을 개간하여 참외, 오이, 수박 등을 심어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무한정 보시하였으며, 그런 여가에 짚신을 삼아서 모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신을 보시하는 등 온갖 일로써 많은 사람을 구제하시다가
몸뚱이까지도 보시하고자 돌아가실 때에는 범어사 뒷산 밀림 속에서 삼일동안
헤매다가 굶주린 호랑이에게 먹히는 바 되었다고 한다.
스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스스로 숙명통(宿命通)을 못하였으므로
세 가지의 증명할 일을 남겨 놓기로 하였다.
나라의 고급관리가 되어 올 때에는 자신은 어산교 앞에서 내리겠으며,
자신이 쓰던 방을 봉해 두었다가 스님 스스로가 열 것이며,
사찰의 어려움을 물어서 해결할 것을 약속하리라 라는 것이었다.
스님이 돌아가시고, 그 제자되는 스님들도 이미 늙었으나.......
낭백 스님의 그 눈물겨운 원력이 성취될 날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느 날,
순상국(巡相國)이라는 중앙의 고급관리가 온다는 전갈을 받고 스님들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주지스님 이하 모든 대중들은 어산교까지 나가서 행렬을 지어
부복하고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 순상국은 일주문까지 말을 타고 올라가는 상례를 깨고
어산교 앞에서 말에서 내려 걸어서 절로 올라오셔서, 사찰을 자세히 돌아본 뒤
수 십 년 동안 봉해둔 낭백 스님의 방 앞에 와서는 기어이 문을 열라하여
봉함을 뜯고 열어보니, 개문자시폐문인(開門者是閉門人)이란 스님의
친필유묵이 몇 십년의 세월 속에 얼룩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지 스님의 차대접을 받으면서 사찰의 어려움을 묻고 36종의 부역을 혁파해
줄 것을 약속하고 돌아가서 그 즉시 동래부사에게 명하여 시행하게 하였다고 전한다.
범어사 초입 오른쪽 오솔길옆에 5 기의 비석이 있는데 중앙에
巡相國趙公嚴革祛寺弊永世不忘壇.
순상국 조공은 스스로 낭백 스님의 후신이라고 한 일은 없다.
그러나 그 분은 낭백 스님의 원력을 성취시킨 사람이므로
낭백 스님의 환생이라고 범어사에서 구전되어 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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