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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석사로 오르는 초입의 노목들이 禪石寺를 더욱 고즈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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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석사 정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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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인 느티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기와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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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석사 사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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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석사 석재 서병오 흥선 대원군이 대구의 神童筆인 石齋를 운현궁으로 불러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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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상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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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석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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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석사 대웅전 본존불과 후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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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본존불과 광배. 화려한 대좌와 특이한 형태의 두광과 신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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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석사 대웅전 수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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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단에 나툰 龍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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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에서 머리를 서로 마주하며 여의주를 희롱하며 구름속으로 몸을 나타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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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스님이 법력으로 禪石. 지상의 높이를 약110cm의 크기만두고 집채만하였던 바위를...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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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 명부전 - 칠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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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의 측면의 대량이 모래시계 처럼 대목장님의 솜씨가 대단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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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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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과 보호수 느티나무. 기와울타리가 한결더 운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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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석사 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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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료 마루에 있는 종. 조선 중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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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로 속을 파낸후 법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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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字형의 정법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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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료(正法寮) 편액은 남전 한규(南泉 光彦·1868~1936)의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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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료 건물내의 조왕단 나무팔만사천조왕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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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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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석사 禪石에서 바라본 세종王子태실이 있는 안산 胎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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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왕자태실. 君(서자)의 태실: 11기. 大君(적자)의 태실 8기
서진산선석사(棲鎭山禪石寺)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신라 말 의상대사가 화엄 10찰 중 하나로 선석산 서쪽에 창건하여 신광사라 했으며
고려 말 나옹 스님이 신광사를 옮기려고 현 위치를 발견하고 기초 공사를 하던 중
나무를 자르고 풀을 베고 보니 집채보다 큰 바위가 있어 동리 사람 수백 명을 동원
갖은 수단을 다 했으나 바위를 옮길 수 없었다.
대사는 선정에든 사흘 만에 그 바위가 흔적없이 사라졌다. 그후 선석사로 고쳤다 한다.
현재 가람은 1804년(순조 4) 중건되었으며, 현재 전각으로는 대웅전,명부전,칠성각,
산신각,범종각,천왕문,정법료,요사 등으로 아담하게 배치되어있다.
가람으로 오르는 길의 노송과 느티나무의 운치로 선석사의 소담함을 더해주고 있다.
건너 안산 봉우리엔 세종대왕 왕자태실이 있어 예로부터 선석사는 태실 수호 도량으로
영조로부터 어필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한다.
대웅전내의 본존불의 등받이가 광배(두광과 신광) 의 구실을 하는 독특한 형태로서
국내 유일무이한 모습이다.
수미단의 전면에는 2마리의 龍이 화염을 뿜으며 서로 마주보며 노니는 모습을 그린 후
그 위에 여러 문양으로 구멍을 내어 덧붙였다.
천왕문은 팔작지붕에 정,측면 각 1칸으로 내벽의 양면에는 사천왕이 그려져 있으며,
선석사(禪石寺)편액은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 1862~1935)가 쓴 글씨.
정법료는 ㄷ字형의 건물로서 커다란 부엌에는 조왕단이 모셔져 있으며,
정법료(正法寮) 편액은 남전 한규(南泉 光彦·1868~1936)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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