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에비타의 전설 / 원평제 글 ...배경음악은 뮤지컬<에비타> 메인곡...

문근영 2011. 7. 14. 07:50


        관광의 목적이 모름지기 보고 즐기고 또 느끼는 과정에 있다고 한다면

        아르헨티나는 무엇으로 이토록 여행자들을 모으는가?

        아마도 이과수 폭포, 탱고의 본향, 그리고 에비타가 영면한 묘역으로 사람들을

        순례자처럼 이끄는 것 같다.

         

        위에 든 세가지 때문에 이 곳에 왔다면---, 이 거대한 팜파스의 평원을

        그래서 찾아왔다면---, 그렇게도 명료한 목적을 품고 왔다면 그 여정은 

        정녕 "순례 역정"이라 하여도 좋으리라.

        나도 그리하였다.

        "이과수 폭포"를 마치고 이번에는 에바 페론, "에비타를 조상하는 차례"

        라고나 할까.

         

         

                                     에바 페론, 에비타의 묘역

         

         에바 페론(1919-1952)---,

        가난한 농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3류 배우로 전전하다가, 후안 페론 대통령과

        누구도 범접못할 치열한 사랑을 한 끝에 영부인이되었고,

        노동자와 소외된 사람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지만 33세를 인생의 절정으로

        삼아 투병 끝에 암으로 세상을 등진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그녀는 1978년 6월 21일 런던의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에서 뮤지컬 <에비타>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브라질리아 공항을 들렀다가 다시 떠난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아르헨티나,

        팜파스 대평원은 다시 한번 나를 왜소하게 만들었다.

         

        이제 오래 그리던 "아름다운 공기"라는 뜻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항에

        내리자마자 이번에는 거대한 물결이 눈 앞에 전개되었다.

        놀라움에도 한계가 있어서 이번에는 차라리 바다, 그래 대서양이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소박한 기대도 절박한 심정을 무마하지는 못하였다.

         

        "저 큰 물결은 설마 다른게 아니고 대서양이 틀림없겠지요?"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 다닌다는 교민 여학생 가이드에게 내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아니요. 바다라고들 생각하시는데---. 저건 강, 라플라타 강입니다."

        좌우간 강폭만 220 킬로 미터라고한다.

        이과수 폭포와 이따이푸 발전소를 있게한 "파라나 강"을 원류로하여 여기

        까지 흘러내려온 장강인데, 그 폭이 어지간한 강의 길이만 하였다. 

         

         

         

        (공항에서 내리면서 본 "라플라타 강"에는 큰 선박이 떠있고 강폭이 220 킬로

        미터에 이르렀다.)

         

         

         

        ("강" 때문에 공항에서부터 놀란 가슴을 안고 일단 시내로 들어왔다.

        에비타처럼 생전에 이미 유명하였거나, 아니면 돈을 많이 벌어 둔 부자들의

        묘역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도 가장 땅값, 집값이 비싼 구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로 치면 "강남 역"이나 "압구정 동"이 있는 동네에 거대한 묘소가 빼꼭히

        들어차 있었다.

        묘역 유지비도 당연히 비싸서 후손들이 감당을 못하면 방을, 아니 묘를

        빼야하는 모양이다.

        기다리는 돈 많은 가문들이 줄을 서 있다고한다.)

         

         

        이 거창한 묘소들과 부자들의 대저택이 함께 있는 곳이 바로 레꼴레따 구역

        이다.

        돈 많은 사람들이 살아 숨쉬는 양택과 돈이 많았던 죽은자들이 묻혀있는

        음택, 그러니까 유택이 혼재하셈이었다.

         

         

         

        압구정 동, 아니 레꼴레따로 가는 길이 아무리 바빠도 도중에 있는 카페에

        일단 들렀다.

        커피 한잔으로 숨을 돌려야했다.

        이 곳 커피 잔이 아주 작은 것은 익히 아는 바와 같았다.

         

        아르헨티나는 카페 문화가 프랑스나 이딸리아에 못지 않다.

        오월의 광장에 있는 카페, "또르띠니"가 가장 유명하여서 문호 보르헤스,

        작곡가 피아졸라, 화가 베니토 킨케라 마르틴 등이 자주 들리던 곳인데

        여기 레꼴레또로 가는 길목에 있는 카페와 바아도 역사가 가장 오랜 명소

        중의 하나에 속하였다.

         

         

         

         

         

         

         

         

         

         

        이곳 노천 카페도 유명한 곳이라는데 아래에 보이는 오래된 등나무의

        굵은 위용이 압도적이었다.

         

         

         

         

         

                                      묘역으로 가는 길목에 선 성당---.

         

         

                      평화 속에 영면을 바라는 기원문이 묘역 정문에 있다.

         

         

        이 조각품들은 모두 묘역 가문의 소유이자 인류의 문화유산이 되었다고 한다.

         

         

         

         

                              음택의 골목에서 길을 잃을 지경이었다.

         

         

         

         

          

         

        오른쪽 동판에 에바 페론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에바는 두아르테라는 성을 갖인 친정 가족들과 함께 묻혔다.

        그러나 남편인 페론은 여기 묻히지 못하고 고향 땅으로 돌아갔다.

        합장에 따른 정치적 부담감 때문에 군사 정권에서 따로 하였다는 것이다.

          

         

         

         바로 앞,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는 청춘 남녀의 사랑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바로 앞에 있는 조촐한 성당에서 평범한 우리들은 마음의 안식을 찾았다.

         

         

         

         

         

         

         

         

        문화회관이자 박물관도 가까이에 있었다.

        유명한 "핑크 하우스", 대통령 궁은 아니다.

         

         

                                       이곳은 부자 아파트 동네이다.

         

         

        핑크 하우스 는 나중에 방문한 "오월의 광장" 가장자리에 있었는데

        에바가 살았을 때에는 발코니에 나와서 가난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뿌려주었고 군중들은 열광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가로막을 치고 수리중이었다.

        우리 경복궁, 광화문 앞과 사정이 비슷하였다.

         

                                              

                                                 수리중인 핑크 하우스---.

         

                                

         

         

        아래쪽 사진들은 다시 오월 광장 주변의 정부 청사, 대형 건물들이다.

         

          

          

         

         

         

           

         

         

         

         

          

         

           오월 광장에 있는 카테드랄의 벽면에 붙은 구원 불멸을 상징하는 불꽃.

           카테드랄이라고 하면 성당이라는 보통명사인데 고유명사로 들렸다.

         

           

         

         

        (지하철, "오월의 광장 역".

        나무로 만든 지하철이라고 하였지만 객차의 겉에 나무를 붙여놓았다---.) 

         

          

         

 

                       "7월 9일의 거리"에 우뚝 선 오벨리스크,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였다.

 

 

아르헨티나의 성취와 좌절은 어디에서 왔을까?

20세기 초, 냉동선의 등장으로 이 나라는 유럽에 육류를 독점 공급하며

부를 쌓았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부의 편재가 심하여서 상위 2퍼센트 자본가들만 그

부를 독식하였고, 이어 시민 혁명이 일어나서 에비타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축적된 자본이 그 과정에서의 노력과 창의성은 도외시되고

정의로움을 근간으로 한, 공평한 나눔의 원칙과 소망에 따라 지리멸렬한

분배가 되면서 국가적으로는 선택과 집중을 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유럽 대륙의 잇단 전란과 이에 따른 금수 조치와 소비의 위축,

뒤이은 미국 육류 업계의 막강한 세계 시장 지배구조 등이 이 나라를

오늘날 우리보다 못한 경제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극단적 부의 편재도 이웃한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치유되지 못하였다.

 

"미국의 음모론"은 그 동안 국제 질서와 현상을 해석하는 데에 가장

간단하고 편리한 이론이 되어 왔으나 21세기는 이런 편리한 잣대를 냉혹

하게 빼앗아 가고 있는 실정이다.

 

에비타, 그 전설의 고향을 찾으며 나그네의 발길이 두서없이 흔들렸다.


Don't Cry For Me Argentina John
 뮤지컬<에비타> 메인곡
- Olivia Newton -
http://cafe.daum.net/ivoworld
        It won't be easy, you'll think it strange 여러분들에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게 쉽지 않아요. When I try to explain how I feel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That I still need your love after all that I've done 이 모든 것을 이룬 이후에도 여전히 당신들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죠. (주: 페론이 대통령이 된 직후 부르는 노래이므로, 대통령 선거의 성공이 있었지만 여전히 당신들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You won't believe me 당신들은 날 믿지 않을 거예요(믿기 힘들 거예요) All you will see is a girl you on-ce knew 당신 앞에 서있는 이 소녀가 당신이 알던 그 아이라는 것을 Although she dressed up to the nines 비록 이렇게 멋지게 차려입고 있기는 하지만 At sixes and sevens with you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당신 앞에 서있는 것이랍니다. I had to let it happen; I had to change 난 이렇게 해야만 했어요. ; 난 변화를 가져와야 했어요. Couldn't stay all my life down at heel 내 삶을 저 밑바닥 인생으로 팽개쳐둘 수 없었어요 Looking out of the window, staying out of the sun 저 태양 빛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창 밖만 바라볼 수 없었어요 So I chose freedom 그래서 난 자유를 선택했어요. Running around trying everything new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던 거죠 But nothing impressed me at all 하지만 아무 것도 내게 감동을 줄 수는 없었어요. I never expected to 물론 나도 무언가가 스스로 내게 그래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G箸설た?울지 말아요.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진실로 난 당신을 저버리지 않았답니다. All though my wild day 지금까지 이 힘든 나날 속에서도 My mad existence 이 미칠 것 같은 삶 속에서도 I kept my promise 난 당신과의 약속을 지켜왔어요 Don't keep your distance 그러니 나에게서 멀리 떠나지 말아요. And as for fortune, and as for fame 재산이나 명예나 I never invited them in 난 그런 것들을 초대한 적이 없어요(욕심을 낸 적이 없어요) Though it seemed to the world they were all desired 비록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열망 할지 모르지만 They are illusion 그것들은 환상에 불과하죠. They're not the solutions they promised to be 비록 그렇게 보일지라도 그것들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랍니다. The answer was here all the time 진정한 해답은 여기 이곳에 항상 있어요. I love you and hope you love me 난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당신들도 날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헨티나여 이제 더 이상 울지 말아요. (에바가 흐느낀다. 군중들도 그녀의 노래에 따라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헨티나여, 울지 말아요.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진실로 난 당신을 저버리지 않았답니다. All though my wild day 지금까지 이 힘든 나날 속에서도 My mad existence 이 미칠 것 같은 삶 속에서도 I kept my promise 난 당신과의 약속을 지켜왔어요 Don't keep your distance 그러니 나에게서 멀리 떠나지 말아요. Have I said too much? There's nothing more I can think of to say to you 제가 말이 너무 많나요? 이제 당신들에게 할 말이 더 생각나지 않네요. But all you have to do is look at me to know that every world is true 하지만 이제 절 지켜보면 이 모든 말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에비타>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 에비타의 이중적 삶]


      지난 1970년대 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뮤지컬 ´에비타´가 이번에는
      영국 런던의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모양이다. 에비타의 고향이자 영국과 외교적으로 앙숙관계인
      아르헨티나에서도 런던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에비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가 바라까스 지역(탱고와 극장식 식당이 집중돼 있는 지역) 출신의 뮤지컬배우가
      주연으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아르헨 현지에서 상당히 잘 알려진 뮤지컬배우 에레나 로저(31)는 이 뮤지컬의 주연배우를 노리고
      편도 항공권 한 장만 달랑 소지한 채 런던행 비행기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보다 더 에비타 역을 잘
      소화할 거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3년 전 앤드류 웨버와 팀 라이스 콤비에 의해 뮤지컬 에비타가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접한 엘레나는 무작정
      런던으로 날아가 오랜 기간 동안 제작자들을 만나 에비타 역은 꼭 아르헨티나 출신인 자신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53cm 정도의 단신에다 각종 핸디캡을 무릅쓰고도 세계적인 스타의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하지만 아르헨 국민들은 그의 성공을 축하하면서도 한편에선 그의 아버지가 열렬한 페론주의자라는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왜 하필이면 영국이냐"는 비난의 목소리도 내고 있는 분위기다.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오(No llores por mi, Argentina)´로 더 유명한 ´에비타´에 얽힌
      진정한 사연은 무엇일까.

      지난 6월 필자가 페론과 에비타에 대한 감추어진 진실을 취재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페론당 관계자들에게
      ´왜 사람들이 에바를 ´에비타´라고 부르게 됐나´와 ´에비타´가 가진 이중적인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해
      문의했던 자료를 최근에야 입수해 이를 다시 정리해본다.


      지난 1950년대 초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대통령 영부인으로 유럽
      사교계를 이끌며 전세계 상류층의 유행을 주도해 귀부인의 상징이 되었던 에바 페론은 역설적이게도 헐벗고
      소외 받은 극빈자들과 노동자들의 희망이기도 했다.
      이런 에바의 이중적인 삶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비타´ 라는 애칭이 갖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게 ´페론당´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아직까지도 전세계 뮤지컬의 타이틀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에비타(Evita. ´작은 에바´ 혹은 ´귀여운 에바´라는
      의미)´는 에바가 어린 시절 가족들과 이웃사람들에 의해 불려진 애칭이었다. 다시 말해 ´에비타´는 가난에
      쪼들리며 살았던 어린 시절 에바의 눈물겨운 모습과, 친절했던 이웃들이 잊을 수 없는 그의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이름이었던 것이다.
      벽촌의 농장지대에서 궁핍하게 성장했던 어린 에바(에비타)가 장성하고 인기인으로 변신해 급기야는 대통령의
      부인이 되어 서민들의 보호자임을 자처하고 나서자, 아르헨티나 국민들 사이에서 ´에비타´는 밑바닥 인생에서
      대통령 영부인이 된 신데렐라로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에비타는 상류층이나 영부인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떠나 누구나가 쉽고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가난한
      서민의 딸이라는 친숙한 이미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에바 페론 스스로도 ´에비타´는 대통령 영부인이라는 격식에서 벗어나 소외계층들과 함께 고통을 나눈 존재요,
      청소년들에게는 어머니, 노동자들에게는 동료, 미혼모들에게는 언니나 동생 같은 친숙한 존재를 의미했다고
      자서전 ´내 삶의 존재 이유´에서 밝혔다.

      "에비타는 귀족이 아닌 극빈자들의 상징"

      에바는 평소 고위급 공무원들이나 외교사절들이 자신을 향해 ´대통령 영부인님´이라든가 ´페론 여사님´ 등의
      호칭을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 거부반응이 일어난다고 자신의 측근들에게 고백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르헨티나 대통령 영부인으로써 그 역할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면서, 세계 일류국가를 지향하는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로서 그에 걸맞은 생활을 해야만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에바가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에바는 대통령 영부인의 역할은 에바 페론이라는 공식적인 이름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이런 역할을 떠난
      개인적 구호사업은 ´에비타´라는 이름을 가진 한 개인의 봉사활동이라는 걸 강조했다. 에바 스스로 대통령
      영부인과 극빈 서민의 딸 에비타로 구분해 살아간 자신의 이중적인 생활을 인정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영부인이라는 공식적인 직함에 걸맞은 활동을 하다 보니 유럽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고,
      자의든 타의든 간에 세계 유행을 주도해 귀부인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페론 대통령을 만나기 전부터 심혈을
      기울였던, 소외 받는 서민들을 구제하는 사업의 상징이 된 ´에비타´의 역할은 에바 페론과는 달랐다"는 게
      부에노스아이레스 페론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에비타´로 불리며 극빈자들의 우상이 된 에바가 지난 1946년 페론의 대통령 당선으로 영부인이 되자 현지
      유력 언론사의 한 기자가 에바를 향해 "영부인과 에비타라는 두 가지 이름 중 어떤 호칭을 붙이는 게 좋겠느냐"
      고 물었다. 이에 에바는 주저 없이 "이 땅의 모든 서민들이 즐겨 부르는 ´에비타´라고 써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에바는 또 "사람들이 나를 향해 에비타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어렸을 때의 빈곤했던
      생활을 떠올리며 서민들을 챙기며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 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것이 아르헨티나 서민들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전설처럼 떠돈 ´에비타´라는 애칭이 널리 알려지게 된
      동기다.

      페론재단 관계자들의 자료에 따르면 에바는 "거리에서 만난 청소년들이 나를 향해 ´에비타´라고 외쳤을 때
      나는 아르헨티나 거리 청소년들의 어머니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됐고, 노동자들이 나를 ´에비타´라고
      부르면 나는 그들과 똑같은 동료의식을 느끼게 된다"면서 "소외받은 여성들이 나를 향해 ´에비타´라고 부를 땐
      나는 그들의 언니이자 동생이 되며 그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누리는 가족이 된 느낌을 받는다"고 회고했다.
      결론적으로 ´에비타´의 의미는 누군가의 도움과 이웃의 사랑이 필요한 ´가난한 자들의 상징´이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겐 그가 대통령 영부인으로서의 에바 페론이 아닌 가난한 소녀 ´에비타´로
      아직까지 기억이 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아르헨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유럽 상류층의 유행을 이끌며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던 에바 페론에게
      정치적인 야망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에 대해 에바는 자서전에 "사람은 누구나가 개인적인 야망이 있게 마련인데 나에게는 대통령 영부인이나
      정치가가 아닌 가난한 ´에비타´로 아르헨티나 역사에 기록되는 게 유일한 야망이자 꿈"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출처:  <김영길/프레시안 기획위원>

      에비따 뮤지컬 홈페이지: http://www.musicalevita.co.kr/

       

       

       

       

       

       

       

      http://cafe.daum.net/ivoworld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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