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파오를 입은 유가령
중국 전통의상의 하나인 치파오(旗袍.차이나드레스)는 청(淸)나라의 만주족 여인들의 창파오(長袍)에서 기원했으며 중국과 서양 의상의 특징을 융합한 근대 중국 여인의 표준 의상이다.
원래 치파오의 길이는 발목을 넘을 정도로 길었다. 과거 만족 처녀들은 시집갈 때만 발목을 넘기는 결혼 예복인 치파오를 입었다. 당시 만족의 귀족 여인들이나 궁중 여인들은 나팔모양의 전통 하이힐을 신었는데, 신발을 덮기 위해 발목을 넘기는 치파오를 입었다.
치파오는 순치 원년에 청나라가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면서 중원 일대에 보급되었고, 만족 여성들의 전통의상으로부터 점차 한족여성들도 즐겨 입는 옷이 되었다.
그후 신해혁명을 거치면서 치파오는 중국 전역에 널리 퍼졌으며, 1920년대 말 서양의 미니스커트가 유행하하기 시작하면서 치파오의 길이도 따라 짧아져 무릎까지 왔고 옷 소매도 반 소매로 바뀌었다.
1930년대 중엽에 이르러 치파오의 길이가 다시 길어져 땅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대신 옆 트임이 점점 높아져 허벅지에 이르렀고, 허리선도 더 잘룩해져서 여성의 몸매를 한층 섹시해보이게 했다. 1940년대, 치파오는 길이가 다시 짧아졌으며 옷소매가 완전히 없어져 민소매가 되었다.
치파오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디자인과 색상이 다양하게 바귀었으며 몸매에 따라 다양한 미를 표현할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치파오는 마른 사람, 뚱뚱한 사람,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 모두가 입어도 아름답게 발전했다.
신부들이 많이 입는 빨간색 치파오
치파오의 종류:
청(淸) 순치(順治) 원년(1644)에 세조(世祖)가 중원으로 쳐들어와 북경에 도읍을 정하고 중국을 통일하였다. 그후 정권이 점차 안정되면서 한족에게도 만족의 전통적인 헤어스타일을 강요하기 시작했고 의상개혁도 추진했다.
그때부터 한족 여인들은 집에 있을 때만 상의에 치마를 입는 투피스식의 옷을 입었고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파오(袍.두루마기)를 입게 되었다.
당시 파오는 종류도 다양해져서 '차오파오'(朝袍), '롱파오'(龍袍: 용포, 황제가 입던 용무늬를 수놓은 예복), '망파오'(망포, 대신들이 입던 이무기 무늬를 수놓은 예복), '창푸파오'(常服袍: 평상복) 등이 생겼다.
흰색 치파오
치파오의 발전
청나라 말엽, 청정부는 많은 유학생들을 외국에 파견하여 서양의 문물을 배우도록 하였고, 군대도 신식 군대로 개편하였다. 중국의 학생과 군인들 사이에서는 서양식 학생 체육복, 모자와 서양식 군복, 모자, 양복을 수입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서양 의상의 수입은 미의 가치 척도 평가에도 영향을 미쳐 일반사회의 복식 관념을 변화시켰다.
그로부터 치파오는 중국과 서양이 융합된 새로운 스타일로 발전하였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의 성공으로 중국의 마지막 봉건왕조가 붕괴되되면서 서양식 의상이 중국에 자유롭게 보급되었고 전통적인 예교와 교화 관념이 희석되고 복제(服制)의 엄격한 등급도 사라졌다.
그후 의상에서도 평민화 국제화 현상이 자연적인 추세가 되었다.
만주족 정권이 패망한후 그 당시에는 전통적인 치파오를 입는 사람들은 아주 적었으며 패션 스타일이 청왕조 때의 화려하고 복잡한 양식에서 간결함을 지향하기 시작했고 색상도 우아함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여성의 자연미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치파오를 입은 장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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