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소금강산 굴불사지 (경주)

문근영 2011. 4. 5. 10:02

  소금강산 굴불사지사면석불                      西 ← 南 ← 東

 

  사면석불               서방 미타삼존불 ← 남방 입불 2구

 

 

  서방 아미타여래삼존불입상.              세지 + 미타 + 관음

 

  서방 본존불     아미타래입상

 서방 미타여래상반신.   소발. 우견편단. 미타상품중생인 

 

  서방 좌협시 원각 관음보살입상

 

   좌협시 관음보살불두

 

  좌협시    관음보살 왼손

 

  관음보살상의 무릎 아래부분  양발은 보완한듯 !!!

 

  서방 미타삼존불의 우협시 원각 세지보살입상

 

  우협시  대세지보살상의 오른손과 정병

 

   우협시 대세지보살의 무릎 아래부분

 

   북쪽의 보살입상.     미륵보살로 추정된다.

 

   사면불의 북쪽면.    왼쪽에 마애보살입상.    오른쪽에 선각십일면육비보살상

 

   북쪽 선각십일면육비 관음상

 

   동쪽 약사여래좌상

  약사여래좌상.     결가부좌, 왼소에 약합, 오른손 시무외인, 소발, 두광과 신광에 화염문...

 

  남쪽  2구의 입상

 

소금강산 굴불사지(掘佛寺址) 사면석불(四面石佛)  보물 제121호  경주시 동천동

 

굴불사는 신라 제 35대 경덕왕이 백률사로 행차했을 때 땅속에서 염불소리가 들려 파게하니

큰 바위에 사면불이 새겨져 있어 절을 짓고 이름을 '굴불사(掘佛寺)'로 하였다고 전한다.

이 사찰은 언제 어느 시기에 폐사가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고, 통일신라시대에

조각된 것으로 보이는 사면석불과 주춧돌 및 기타 석재들이 있다.

 

사면불은 대체로 동(약사불), 남(석가불), 서(아미타불), 북(미륵불)에 여래상을 조성하였다.


①.東쪽 약사여래는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다.

②.西쪽 미타삼존불입상으로 마애미타불의 좌우협시에 독립입상의 관음과 대세지보살.
    왼쪽 관음보살은 보관에 입상의 화불이 있다.

    양 협시보살상은 한 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두고 균형을 잡는 삼곡(三曲)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삼국시대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통일신라시대에 더욱 유행하는 양식이다.

    높이가 3.51m인 아미타여래는 바위면에 새긴 것이고,
    좌우협시보살상은 다른 돌로 원각(圓角)하여 시립(侍立)하도록 하였다.

 

③.南쪽은 현재 2軀의 마애입상인데  본래는 삼존상이었을 걸로 추정된다.

    오른쪽의 입상(본존여래상)은 얼굴이 훼손되어 분간이 불가하다.

    왼쪽 보살상은 왼손을 내려 정병을 지물로 지니고 오른손을 들어 시무외인을 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우협시가 있었을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다.

 

④.北쪽에는 선각보살상과 마애보살입상 각 1구로서

    왼쪽 마애보살입상은 미륵보살로 추정되며,
    오른쪽 선각십일면육비(十一面六臂팔(譬;비))의 보살상으로 모습이 선명하지 못하다.

 

☆ 이 사면석불은 경주 남산 칠불암(七佛庵)의 사면석불과 안강 금곡사지(金谷寺址)탑의 사방불,
   문경 사불산 사면석불, 예산 봉산사면석불과 함께 우리나라 사방불의 귀중한 불교유산이다.

  예산 봉산 사면불

 

  경주 금곡사지 사면불

 

  문경 사불산 사면불

 

  경주 동남산 칠불암 사면불

 

 

출처 : 참 나를 찾아 山寺로의 여행
글쓴이 : 신기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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