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해동최초가람 태조산 도리사

문근영 2011. 3. 7. 08:43

   도리사 산문        절에서 4.5km밖의 해동최초가람성지태조산도리사

  아도화상흉상

   수선료

  설선당

 

 

   도리사  적멸보궁

  세존사리탑                            1987년석종형사리탑에서 발견되어 1977년 이곳에 봉안

 

  아도화상흉상

 

   도리사 태조선원  ↕

 

   태조선원  (오세창)

 

   보주 아래에 仰蓮을 새기고 그 위로 다섯 개의 원을 마련하여 '世 尊 舍 利 塔'.

  도리사 화엄석탑 보물 제 470호

 

  남쪽면 가운데에는 세로로 긴 장방형의 門扉(문비)가 있어 사리 봉안의 상징성을 보이고 있다.


 

  화엄석탑 기단부

 

 극락전은 '도리사금당암중창기](1807)와 고종 13년(1876)의 중건 사실로 보아 19세기초의 건축

   극락전 벽화와 궁판의 삼태극문양  ↕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기]에 따르면, 최초의 금박은 조선 영조 7년(1731),1968년 3월에 개금

 

  삼성각

 

  아도화상이 좌선을 했다는 곳으로 신선대 혹은 좌선대로 불린다  ↕

 

 

이 비는 도리사에 佛糧畓(불량답 ;절의 논)을 시주한 내용 즉, 시주자와 논의 면적을 밝혀 놓았다. 명문으로 보아 조선 숙종 38년(1712)에 石手(석수) 金成元(김성원)이 석비를 조성,

刻字(각자)하고 僧統(승통) 能哲(능철)에 의하여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傳 毛禮家 井 (도개면 도개리) 경북 문자 제296호  묵호자 아도가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하고져....우물의 깊이가 3m 이며 바닦에는 나무판자를 깔았다.

 

경북 구미 해평  태조산 도리사

 

도리사는 신라 불교가 맨처음 뿌리를 내린 곳으로, 한국불교의 성지로 손꼽히고 있다.

도리사는 417년 (신라 눌지왕 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당시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신라땅에 온 아도화상은 한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길지가 있어 절을 짓고 도리사(桃李寺)라 하였다.

경내에는 적멸보궁,극락전, 태조선원,삼성각 등의 법당과 요사가 있다. 각 건물에는 현판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불상·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화엄석탑과 세존사리탑, 아도화상사적비, 도리사불량답시주질비, 아도화상신선대(좌선대).

도리사 앞에는 도리꽃 피었더니 桃李寺前桃李開
묵호자 가버린 뒤에 아도가 왔네 墨胡已去道師來
뉘 알리요, 빛나던 신라 때 모습 誰知赫赫新羅業
모례의 움집 속에 재뿐인 것을! 終始毛郞 裏灰
 

조선시대 숙종 3년(1677) 큰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 뒤 영조 5년(1729) 아미타불상의 금칠을 새로 하여 산내암자였던 금당암으로 위치를 옮기면서

암자 이름을 도리사로 바꾸니 옛 도리사는 터만 남게 되었다.

 

현재 냉산 도리사(금당암)에 올라가기 전 계류변에 장대한 石築址(석축지)가 있어서 마을에서는

이 곳을 '옛 도리사터'라 전하는데, 이곳이 신라시대 도리사의 원 위치로 추정된다.

1977년 조선시대 石鐘型 舍利塔에서 8세기경의사리함과 사리가 발견 되었다.

출처 : 참 나를 찾아 山寺로의 여행
글쓴이 : 신기루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