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금오산 『금오동학』금석문은 해동초서 황기로의 글씨

문근영 2011. 2. 12. 09:11

 

 

  금오동학(金烏洞壑)   海東草聖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書   (1521~1575) 선산 출신
                                글자크기 세로×가로: 金(103㎝×72㎝)  烏(107×69)  洞(90×52)  壑(95×50)
  금오산의 깊고 그윽한 절경이란 뜻.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 매학정(梅鶴亭) ↕

 

금오동학(金烏洞壑)   해동초성(海東草聖)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書   (1521~1575)

금오산 케이블카 시점에서 등산로를따라 5분정도 오르면 북편 낮은 절벽에

『금오동학(金烏洞壑)』이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다.
금오산의 깊고 그윽한 절경이란 뜻.

이 글씨는 풍마우세(風磨雨洗)로  마모되어 판독조차도 어렵다.

 

선산의 대망(大網)출신으로 경주부윤 상정 황필의 손자이며

진사 황옥(黃沃)의 아들인 황기로의 글씨다.

진사에 합격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서예에 정진하여 초서(草書)에 특히 능했으니

모제 김안국과 중국에 들어갈 제 그의 솜씨가 뛰어나  왕휘지 이후 일인자라 하여

해동초성(海東草聖)이라 극찬하고 서로가 글 한 점씩 얻기를 원했다 한다.

 

그는 슬하에 아들이 없고 여식 하나만 있어 율곡(栗谷) 선생의 아우인

옥산 이우(玉山 李瑀)를 여서(女壻사위)로 맞았다.

 

고산은 고아 강정리(江亭里)의 나즈막한 고산아래 보천탄(寶泉탄)에

정자를 지어 매학정(梅鶴亭)이라 하고

매화(梅花)와 학(鶴)을 기르면서 옹서(翁壻)가 같이 즐겼으며
세상에서는 사절(四絶)이라 하고 옹서간에 서로

詩로서 화답하고 보천탄을 굽어 보며 소일하면서 지냈다고한다.

 

 

출처 : 참 나를 찾아 山寺로의 여행
글쓴이 : 木 石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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