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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돈벌이에 뛰어든 선비, 沈大允 / 진재교

문근영 2011. 1. 6. 08:01

제6호 (2006.07.12)


돈벌이에 뛰어든 선비, 沈大允


진 재 교(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뛰어난 저술을 남겼음에도 잊혀진 실학자가 있다. 일찍이 일본 학자 다까하시 도로우(高橋亨)이 양명학자로 지목한 심대윤(沈大允)이 그분이다. 그는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준소(峻少: 강경파 소론)의 맹주였던 심수현(沈壽賢)의 현손이다. 심대윤의 증조부 심확은 을해옥사(1755년)에 연루되어 호역죄인(護逆罪人)으로 참형을 당했다. 그는 역적의 후손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고 평생을 살았다. 때문에 110여 책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저술했음에도 마음대로 밖으로 내놓지 못하였다. 이렇게 묻혀 있다가, 위당 정인보가 그의 경학(經學)을 ‘우리나라 경학의 빛’으로 주목하였고, 최근에는 그의 저술과 경학세계를 조명하여, 19세기의 대미를 장식한 실학자로 심대윤을 재발견하였다.

상공업에 종사하지만 선비의 자세를 잃지 않아

심대윤의 인생 역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역적의 후예로 평생을 빈궁한 처지로 살았다. 그러면서도 ‘독서’를 하면서 ‘사(士)’의 존재방식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의 인생 역정에서 가장 큰 문제가 빈곤한 경제 문제였다. 마침내 그는 이를 타개하고 가문의 명맥을 유지하고 가족을 위해 마침내 ‘돈벌이’의 세계에 뛰어든다. 그것도 당시 사회가 가장 천시하던 장인바치의 일에다 장사치에 종사하였다.

심대윤은 당시 경기도 안성의 가곡(佳谷: 지금의 용인시 원삼면 가좌리)에 살면서 안성읍의 동리(東里)로 이주하여 ‘돈벌이’를 시작한다. 적은 자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상공업이 유리하였고, ‘안성’이라는 지역도 돈벌이에 알맞은 장소였다. 심대윤이 반상(飯床) 만드는 공방을 차린 것은 동생이 배운 기술 덕이었다. 그리고 적은 자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상업이라 여겨, 한약방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그는 약간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명족의 후예이자 독서를 하는 선비가 장사치로 전락하고, 공업에 종사한다는 자체가 그야말로 말 못할 수치였다. 자신도 괴롭기 그지없었고 죽고 싶기까지 하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 그의 심리적 상태가 어떤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동생과 함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선비가 독서를 하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선비도 아니고, 가문도 유지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상공업에 종사하면서도 “궁해도 선비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窮不離士)”는 자세를 견지하며, 방대한 저작도 구상하였다. 그가 글을 읽고 저술을 하면서 상공업에 종사하면서 체험한 것을 십분 활용하고 자신의 저술에 활용하기도 한다. 그의 저술에 다른 실학파와 전혀 다른 경제현실과 논리를 보이는 것은 자신이 직접 상공업에 뛰어들어 민초들과 상대한 삶의 체험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민초들과의 삶의 체험에서 복리사상(福利思想)으로

심대윤의 고조부인 저촌(樗村) 심육(沈 , 1685-1753)은 조선 성리학의 태두였던 하곡 정제두의 수제자였다. 이런 관계로 심대윤의 학문은 양명학(陽明學)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그는 이러한 가학의 전통과 민초들의 인정세태에서 체험한 사유를 토대로 그의 실학적 저술에는 ‘이(利)’, ‘욕(欲)’, ‘복리(福利)’ 등의 개념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는 ‘이’와 ‘욕’, ‘복리’를 인간본성으로 인정하였다. ‘이’를 좋아하는 인간의 태도를 긍정하고, 욕망이 없는 사람은 목석과 같다고 하여 욕망을 인간의 기본조건으로 강조하였다. 또한 식(食)을 이(利)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인간의 삶과 연결시켜 구체화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을 인간의 행복과 이익을 고도의 가치로 설정하여 만인의 복리로 연결시킴으로써 그의 실학적 사유를 인간의 삶의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시켜 놓았다. 이런 면에서 그의 저술들은 ‘민중적 경전’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이러한 경전해석과 실학적 사유 안에 있는 개념들은 민초들의 복리사상(福利思想)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기왕의 실학적 면모와 갈리고 있다. 자신이 서문을 쓴 『복리전서』의 글을 음미해 보자.

“복리전서의 내용을 한 번 읽으면 한 번의 복리를 얻을 것이고, 열 번 읽으면 열 번의 복리를 얻을 것이다. 읽기를 많이 할수록 복리도 더욱 두터워질 것이다. 한 푼을 행하면 한 푼의 복리를 얻을 것이고. 열 푼의 복리를 행하면 열 푼의 복리를 얻을 것이다.”

글쓴이 / 진재교(陳在敎)
·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 저서: 『이계 홍양호 문학연구』, 『이조후기 한시의 사회사』, 『동아시아 서사학의 전통과 근대』, 『근대전환기 동아시아 삼국과 한국』등
· 편역서: 『알아주지 않은 삶』, 『조선 후기 인물전』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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