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비봉산 수정사 (의성)

문근영 2011. 1. 4. 10:43

    비봉산에 살포시 내려 앉은 수정사

 

    월영루.  대소 법회와 재례의 장

 

    월영루 처마도리에는  대서예가 차우 김찬균과 同遊客 수양차  다녀간 흔적이...乙未 5월초(1955).  차우 45세 !!??.

    부산온달거사 웃고가다.  65.7   10년후 다시다녀간 흔적인듯 !!!

 

    대광전.   높다라게 돌로 단을 비스듬하게 쌓은후 봉황이 살포시 내려앉은듯한 주법당

 

    대광전 편액  차우 김찬균書    한반도 지도가 없는걸로 봐서 1955~1965년경에 쓴 글인듯함.

 

    대광전 어칸삼합문

 

    대광전 협칸 삼합문.  문살의 문양이 이채롭다,     사성제 팔정도를 !!!

 

    건물의 중앙에 격외선원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격외선선 툇마루 안쪽에는 1986년에 봉안된 신중탱이 봉안되었다.

 

    격외선원의 한칸을 넓고 커다라게 부엌을 배치하여 조왕대신을 벽면에 봉안하였다.  나무팔만사천조왕대신 ~~

 

     영각

 

    영각에 걸린 구담선사 영정 찬기  

     고운사에서 구담화상九潭和尙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은 함홍당涵弘堂 치능대사致能大師(1805~1878)는조선불교

     禪敎兩宗正事를 지냈으며,함홍당은 말년에 고운사에 주석하다가 고종 15년(1878) 74세로 입적했다.

 

    공덕비 세월의 이끼를 많이 입은 시주자의 이름이 새겨진 비

 

    산령각.   여느사찰의 산신각보다는 한층더 격을 높여 신성시 하는듯... 지붕의 박공면과 툇마루가...

    산령각 중수 시주 공덕문. 춘산면 빙계동 乾 孫기준,기섭,병섭  시주 1949年.     氷溪洞에는 손씨들이 많이 거주했는데 !!!

    내가 돈을 모를때 즉 5살었으니 오만원은 큰 돈이었을 것...   그런데 초층탑신면에 !!!

 

    탑  4.5층 탑신은 없는데 초층탑신면에 산령각 중수 시주자 가족명단에서 1949년.

        탑 앞에놓인 기복 공돌....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 주시는 소원성취 기원돌이라 생각된다.

 

    명부전

 

     범종각

 

    염화실

 

    부도.   가람의 초입 계곡건너에 봉안된 부도 2구. 어느 스님의 부도인지 판독이 불가하다. 

비봉산 수정사 (飛鳳산 水淨寺)  경북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신라시대 때의 의상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하고 있는 유서깊은 천년고찰 수정사는 비봉산아래

깊은 골짜기 사이를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흘러 내리는 개울가에 자리한 16교구 고운사의 말사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수량사(修量寺)라고 나와 있으나,

18세기의『가람고(伽藍考)』에서는 지금은 수정사(水淨寺)라고 부른다.

특히 조선 선조 25년(1592)의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명 유정스님이 머물면서 금성산에 진을 치고 왜적을 격퇴했다.

 

조선 헌종 원년(1835)에 화재로 대광전만 남기고 모두 전소되어

구담 전홍(九潭展鴻) 스님이 옛터 위쪽인 지금의 자리에 중창하였다.

 

수정사는 월영루.격외선원,영당.대광전.명부전.산령각.범종각.요사.곳간채 등이

비봉산 청계변에 살포시 자리하고 있다.

 

★월영루(月影樓)
정면 5칸에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중앙칸 서까래아래 납도리에는

「차우 김찬균외 동유객 수양차 1955(을미)年 五月初」「부산온달 웃고가시다 65.7」라는 희미한 붓글씨가 남아있다.

대광전 편액도 이때쯤 쓴것으로 사료된다.
차우 서예가의 편액은 만수산 무량사, 설악산 신흥사, 미륵산 관음선원,

봉미산 신륵사,영도 태종사.월류산 영명사 범종루  등 등...

 

건물 내부 휘어진 대들보에는 붓글씨가  매우 복잡하게 수없이 적혀있다.
처마 아래에는 중수불사 방명록(경술 1970 주지 최월출).  대광전 기와불사 방명록 (1988 주지 근직)등이 걸려있다.

 

★대광전(大光殿)
수정사의 본전으로 자연석으로 막돌쌓기를 하여 기단을 높게 쌓아 올린후 건물을 조성하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 에 겸처마이다. 19세기 중엽의 건립으로 추정된다.
정면의 양 퇴칸을 분합문 빗살문양,

협칸을 삼합문으로  중앙에 특수 문양을 한후 아랫단에는 빗살, 윗단에는 띠살로 구성.  
어칸은 삼합문으로 중앙에 팔각테두리를 한후 빗살로 꾸몄는데 이는 벽사의 의미 ! ?.

 

 ※가람 입구우측암벽에 「현령문후석주 영세불망비」  832-7913

 

@비봉산
해발 671m의 명산으로 우뚝 솟은 산의 형상이 마치 날아가는 봉황과 같다하여 비봉산이라 이름하였는데,
국내최초 사화 산인 금성산(해발 531m)과 쌍벽을 이루고 있으며 멀리서 보면

여자가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누워있 는 형상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산으로서 정상은 기암으로 형성되어 있고

남쪽으로는 거대한 가음지가 한눈에 보이며 뒤편으로 금성산이 위치하고 있다.

 

@아들바위와 딸바위

 이 비봉산 기슭에 큰 바위 두 개가 약 10m 간격으로 자리하였다.
흰 흙으로 쌓여 있는 작은 봉우리 속칭 흰 버리덤의 기슭에 있는

두 바위가 전설의 주인공인 아들 바위와 딸 바위이다.

 

아들 바위의 높이는 6m가량으로, 지상에서 2.5m의 곳에 깊이 20cm 정도의

움푹한 구덩이 4개가 있으니 그 속에 큰 것, 작은 것, 모난 것, 둥근 것 등

여러 가지 모양의 자갈이 많이 얹혀 있음을 본다.
아득한 옛날부터 부녀자들이 물을 긷고 지나면서 왼손으로 돌을 던져 거기에

넣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정성스럽게 돌을 던졌다고 하여 지금도

지나는 손님들은 호기심에 돌을 던져 보는 이가 많다.

 

아들 바위와 마찬가지로 물을 긷고 지나가는 부녀자들이 오른 손으로 돌을

던져 넣으면 딸을 낳는다고 전하는 말에 농 삼아 던져보는 이가 있다.
그리하여 이 두 바위 아래에는 수많은 자갈들이 돌무덤처럼 쌓여 있다.

 

이 곳은 마침 수정사(水淨寺)로 들어가는 길목이 되어서 이 절을 찾아드는 사람들은 이

바위 앞에서 딸을 점지해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바위 구멍을 향해서 돌을 던져 본다.

 

 

 

출처 : 참 나를 찾아 山寺로의 여행
글쓴이 : 신기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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