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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구려 / 송재소

문근영 2010. 11. 1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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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9월 19일자 중앙일보에 홍콩 능인서원(能仁書院) 한국학과 김광석(金光錫)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인 「발해족의 형성과 그 사회행태 연구」가 소개된 적이 있다. 이 논문에서 김교수는 자세한 고증을 통해서 발해가 중국 동북지방의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 아니라 독자적인 민족국가임을 주장했다. 특히 이 논문에서 김교수는 “발해는 당나라의 이백(李白)도 외국으로 인정한 명백한 한민족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이백의 시, 「고구려」


이 기사를 읽다가 문득 이백의 시 「고구려(高句驪)」가 생각났다.

  금화(金花)로 장식한 절풍모(折風帽) 쓰고                       金花折風帽
  백마(白馬) 타고 유유히 거닐고 있네                              白馬小遲回
  넓은 소매 날아갈듯 너울너울 춤추니                              翩翩舞廣袖
  해동(海東)에서 날아온 새와 같구나                               似鳥海東來

고대 중국 측 기록에는 ‘고구려’의 표기가 ‘高句麗’, ‘高句驪’, ‘高句儷’, ‘高麗’ 등으로 일정하지 않다. 김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이백도 발해를 고려, 고구려, 백제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므로 위의 시가 고구려인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발해인을 묘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존하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인물들이 “절풍모”를 쓰고 “넓은 소매”의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백의 시흥(詩興)을 불러일으킨 인물이 고구려인임에 틀림없다. 설령 발해인이라 하더라도 발해가 고구려의 유민들이 세운 나라인 만큼 그 복식(服飾)이 비슷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000년 중국에서 출간된 『당대절구상석(唐代絶句賞析)』에는 이 시를 해설하면서 “고구려는 당(唐)의 이웃나라이다”라 전제하고 이백이 이국(異國)의 풍정(風情)을 노래한 작품이라고 했다. 이백은 자신을 용납하지 않는 당시 현실에 대한 불만과 고독 속에서 일생을 보낸 불우한 시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는 낭만적 상상력을 통하여 불만의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초월의지가 강하게 나타나 있다.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찬 현실 너머에 있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는 항상 동경했다. 그 이상적인 세계가 천상(天上)의 선계(仙界)로 나타나기도 했고 낯설고 신기한 이국풍경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위의 시는 이와 같은 이백의 이상이 투영된 시이다. 이 시에 그려진 고구려인은 음모와 술수로 권력투쟁을 일삼는 당나라 조정의 관리와는 다른 인간형이다. “날아갈듯” 너울거리는 소매를 보고 문득 바다 동쪽에서 날아온 한 마리 “새”를 연상한 것이다. 새는 자유를 상징한다. 새는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다. 아마도 이백은 바다 동쪽 이국에서 날아온 한 마리 새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로 인식했던 고구려를 왜 중국이라 하는가?

이렇게 볼 때 이백은 분명히 고구려를 ‘다른 나라’로 인식했음이 틀림없다. 김광석 교수의 논문에서 지적한 바, 발해를 다른 나라로 인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백도 고구려를 독립국으로 인정했고, 『당대절구상석』이 출간된 2000년까지도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고구려를 ‘이국(異國)’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중국은 왜 새삼스럽게 고구려마저 중국사의 일환으로 편입시키려 하는가?

지금 우리가 발해와 고구려의 옛 땅을 반환하라는 비현실적인 요구를 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사실대로 바르게 기술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중국의 ‘대중화(大中華)’ 프로잭트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너무나 미미한 것
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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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송재소
·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 저 서 : <다산시선>
            <다산시연구>
            <신채호 소설선-꿈하늘>
            <한시미학과 역사적 진실>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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