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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8세기 학술(學術)의 방향 전환 / 박석무

문근영 2010. 11. 10.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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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학술(學術)의 방향 전환


17세기에 일생을 보냈던 반계 유형원(1622~1673)은 초야에 묻혀 학문만을 연구하여 『반계수록』이라는 대저(大著)를 완성하여 우리 민족에게 실학의 학풍을 제대로 선사해준 탁월한 학자였습니다. 이런 선구자에 힘입어 반계의 학문을 계승하여 18세기에 실학의 꽃을 피운 분이 성호 이익이라면, 그의 가문에서 성호의 경학(經學)이론을 본질적으로 체득하여 당시 학문의 폐단이 어떤 것인가를 제시했던 학자가 성호의 조카이자 큰 제자이던 정산(貞山) 이병휴(李秉休:1710~1776)였습니다.

18세기에 일생을 보낸 정산은 「논학술지폐(論學術之弊)」라는 한편의 논문에서, “옛날 성인의 학문은 천리(天理)를 밝히고 인욕(人慾)을 막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 오늘의 학자들은 그렇지 못하고 도학(道學)의 이름만 빌려다가 이욕(利慾)의 사사로움만 건지려 한다. … 이거야말로 오늘날 학술의 폐단의 하나다. 공자(孔子)를 존경하고 주자(朱子)를 존경함은 당연하다. 요즘 사람의 주자를 존경함은 옛날과 다르다. 글의 뜻이나 고증한 사실은 논하지도 못하고 진실로 글자 하나나 반구절의 말이라도 집전(集傳)이나 장구(章句)에 의문을 제기하면 주자를 반대한다고 배척하고 어진 이를 모멸했다는 법률로 묶어버린다. 이러한 이유로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는 학문이 되고 말았으니 이것이 두 번째 학술의 폐단이다.


성호의 경학을 이어받아 주자학도 비판하고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논리를 세운 정산 이병휴, 성호와 마찬가지로 본격적으로 주자학에서 이탈하지는 못했으나, 이탈할 수도 있고 새로운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는 학술의 전환을 설파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18세기 학문경향에서 다산의 활동이 전개됩니다. 성호학의 후계자들인 이기양(李基讓), 이가환(李家煥), 권철신(權哲身) 등과 함께 지내며 성호와 정산의 학문을 그대로 전수받은 다산은 그러한 선학들의 논리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주자학에서 이탈하고, 성리학의 거짓 도학(道學)의 실체를 밝혀 실학적인 경학이자 다산경학인 실학사상을 집대성하기에 이릅니다.

선학들의 학문적 업적을 계승하여 새로운 학문적 업적을 이룩해내는 학자만이 참다운 창조자임을 그런데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석무 드림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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