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패전 당시 일제는 부여에 조성 중이던 부여신궁 외에 1개의 신궁(서울 남산 남산식물원 자리에 있던 조선신궁)을 비롯, 경성신사와 내목신사 등 총 1400여 개의 신사와 사당을 한반도 전역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국내 어디에도 신사가 남아있는 곳은 없다. 일본식 불교사원의 경우 해방되면서 한국 불교가 접수하거나 피난민 수용소 등으로 쓰였다지만, 신사의 경우에는 대부분 해방되던 8월 15일과 16일 사이에 한국인들이 파괴했기 때문이다. 일제의 패전을 알리는 천황의 방송이 있던 1945년 8월 15일 밤, 단박에 평양신사가 방화되는 등 해방 직후 신사가 거의 파괴됐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신사참배를 강요당한 한국인들로서는 ‘일제의 정신’을 의미하던 신사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경성부청(현 서울시청)이나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미츠코시 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같은 건물의 경우 대부분 석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해방과 6·25전쟁 등 격변을 거치면서도 상하지 않고 남아있는데 반해 신사의 경우에는 대부분 나무로 돼있기 때문에 쉽게 파괴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일제 신사. 그러나 서울 남산 중턱에 그 유구가 남아 방치되고 있다. 지하철 명동역에서 소파길을 따라 올라가면 최근 문을 연 서울애니시네마를 지나 리라초등학교에 닿게 된다. 그 노란색 건물 바로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남산원. 그곳에 일제 신사의 유구가 남아있다. ‘내목’을 일본식으로 읽으면 ‘노기’가 되는데, 노기신사는 일본에서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나 메이지신궁(明治神宮)과 더불어 국가가 공인하는 ‘국가주의 성전’이다. 그만큼 일본 정신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내목신사다.
남산원 영역 곳곳에 널려 있는 유구는 주로 석재들이다. 먼저 운동장 한쪽에 남아있는 미타라이샤(御手手舍). 미타라이샤는 돌로 된 수조로서, 절하기에 앞서 손을 씻고 마음을 가다듬으라고 신사 초입에 놓은 것이다. 한쪽 면에 ‘洗心(세심)’이라 음각되어 있는 이 미타라이샤에는 그 반대편에 기증자와 기증일 등이 역시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奉納 御手手舍 一棟 / 寄進者 高木德弓爾 同 貞子 昭和元年 九月吉日” (소화원년(1925년) 9월 어느 길일에, 다카기 토쿠지(남)와 다카기 사다꼬(여) 부부가 한 개의 미타라이샤를 기증했다는 뜻) 문제는 내목신사, 나아가 일제의 한반도에 대한 신사 정책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미타라이샤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축구 골대 바로 뒤에 놓여 있어 공놀이로 훼손될 우려가 더욱 크다. 뿐만 아니라 미타라이샤 주변에는 석등의 받침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유구도 있는데, 이는 현재 야외 탁자와 의자로 개조(?)되어 쓰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남산원 영역 내에 흩어져 있는 다른 유구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연구나 보존은 차치하고라도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석등 받침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서너 개의 석재는 장독받침으로 쓰이고 있는 실정이고, 당시 신사 건축에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들은 화단 경계석으로 이용되고 있다.
남산원이 위치한 서울 중구청 문화체육과의 한 관계자는 남산원에 신사 유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아니어서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영역 안에 있는 유·무형 문화재에 대한 문화재 지정 여부 결정권과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서울시 문화재위원회나 서울시 문화재과의 입장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어떠한 문화재가 있다면 먼저 가치 평가가 따른 후에 보존이나 수습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며 “(내목신사 유구의 경우) 아직 가치 평가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고 특별히 관리도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일제 강점기와 관련해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독립기념관은 이미 이러한 유구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일까? 신사와 관련해서는 ‘황국신민서사’가 새겨진 비석과 사진·엽서 자료 등만 소장하고 있을 뿐, 독립기념관에는 신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유구는 없다는 것이 독립기념관 학예실의 답변이다.
웬만한 한국인 중 서울 남산에 내목신사는 물론 조선신궁이나 경성신사, 도하(稻荷)신사 등 여러 개의 신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는 극히 드물다. 흘러간 역사에 대해, 특히 일제 강점기와 관련해서는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 등에 대해서만 관심이 높았을 뿐 정작 신사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79년까지는 내목신사의 본전 건물이 남아있었고, 93년까지 창고 건물이 남아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남산원에서 30년 가까이 일 해온 박흥식 사무국장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와서 유물들을 보고 가곤 한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에는 일반인은 별로 없고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가끔 교수님과 함께 찾아오는 정도”라고 말했다. 남산원에서 밴드부를 맡아 지도하고 있는 김대우 사회복지사도 “일본인들이 보는 한국여행책자에 이곳에 대해 나와 있었다”고 덧붙였다. 현재의 남산식물원 자리에 일본 본토에도 15개 밖에 없던 신궁(조선신궁)이 있었지만 표석 하나 세워놓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이다. 국내에 남아있는 일제의 신사 관련 유구가 거의 없다는 면에서, 내목신사의 경우 그 중요성이 남다르다. 관계 당국은 하루라도 빨리 흘러간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내목신사의 유구들을 수습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1. 취재에 도움을 준 이나바 마이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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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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