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리치몬드 도서관에서 다산학을 생각하다 / 심경호(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문근영 2010. 8. 20. 09:27

제37호 (2007.3.14)


리치몬드 도서관에서 다산학을 생각하다


심 경 호(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금년 2월 6일부터 16일까지, 버클리 대학 한국학센터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의 협정에 따라, 버클리 대학 관할 리치몬드 도서관 한국본을 조사하러 미국에 다녀왔다. 사실 창피스런 일이지만 미국이 처음이라서, 시간이 나면 샌프란시스코도 가보고 싶었다. 미국대사관 직원이 비자를 내주면서 초행이냐고 묻는 말이, 마치 내가 그간 반미주의자여서 미국에 가지 않은 것이냐고 떠보는 듯도 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아니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리치몬드 도서관에 별치된 한국본 1500종 가운데 4백종과 버클리 대학 동아시아도서관에 별치된 1백 종을 조사하느라,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 하였다. 동료 교수 한 분과 대학원생 두 사람, 하버드에 유학하고 있는 제자와 함께 다섯 사람이 아침 8시경부터 도서관이 문 닫는 오후 다섯 시까지, 준비해 간 자료와 실물을 대조하고 필요한 자료는 사진으로 찍어야 하였다. 그렇기에 저녁식사 시간에 간단히 술을 마시는 이외에는 근 열흘간 전혀 쉬지 못했다. 일요일 점심에는 도서관 구석에서 김밥과 순대를 먹는 것으로 때웠다. 마침 연일 비가 내렸으므로 어차피 다른 구경을 하기 어려웠기에, 굳은 날씨를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였다. 여름에는 조금 더 기간을 늘리되 나머지를 전부 보아야 하므로 일의 부담이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여름에도 샌프란시스코 시내 전차는 타보지 못할 것 같다.


조선총독부 연구, 낙랑군 위치에 관한 다산의 학설에 주목


그러나 이번 조사 때, 동아시아 도서관의 장재용 씨, 그리고 리치몬드 도서관 사서와 행정직원의 도움으로 열람실의 한쪽에 책들을 모두 펼쳐 놓고 측정하고 사진 찍고 우리끼리 토론할 수 있었으므로 정말 행복하였다. 이렇게 자유롭게 고서를 펼쳐 본 것은 아주 오랜만인 것 같다. 더구나 필사본 잡록류 가운데 가치 있는 것이 더러 있고,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목판본이 집성되어 있어서 일하면서 매우 흥이 났다.


그런데 그 책들 사이에서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조사보고서 원본들이 여럿 끼어 있었다. 그 가운데 오하라 도시타케(大原利武)가 1931년 6월 16일에 제출한 『낙랑군강역고』(일본어)가 들어 있었다. 제1장은 ‘낙랑군이 만주에 있었다는 설과 조선에 있다는 설’인데, 그 본문에 이런 언급이 있었다. “내선(內鮮) 학자에게는 조선에 있었다는 설이 가장 많은데, 유명한 조선의 고증가 정약용은 고조선과 지나(支那)와의 경계인 패수(浿水)를 현재의 압록강이라고 보아, 고조선의 전 영역을 반도에 한정하였다. 따라서 그 옛 땅에 두어졌던 낙랑군도 역시 반도 안에서 추정하는 것은 물론이다. 『조선역사지리』의 저자인 츠다 소기치(津田左右吉)박사도 완전히 같은 설이다.” 아마도 오하라는 낙랑군이 만주에 있었다는 설에 좌단함으로써, 당시 만주에 괴뢰국을 두려고 하였던 일제의 책략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였던 것같다.  


주지하다시피 다산은 통사류의 역사서를 저술하지 않았으나, 『아방강역고』에서 자연 환경을 기준으로 우리의 역사 발전을 파악하는 독특한 시각을 드러내었다. 다산이 『아방강역고』의 초고를 작성하기 시작한 것은 순조 11년(1811) 유배지 강진(康津)에서다. 그 뒤 유배에서 풀려나 마재로 돌아온 뒤  증보가 이루어졌다. 다산이 『아방강역고』를 저술한 목적은 조선 8도의 역사적 연혁을 고찰하려 한 것이다. 연세대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권말에 「팔도연혁총서」를 둔 것이라든가 증보본의 「북로연혁고속」과 「서북로연혁고속」이 당나라 말기 이래 함경도와 평안도 지역의 연혁을 보충한 데 그친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다산은 조선 8도가 본래 ‘기자조선’의 땅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에서 다산의 『아방강역고』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주체적 역사관과 배치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다산은 해배된 뒤인 순조 20년(경진, 1820) 3월의 춘천 여행과 순조 23년(1823) 4월의 2차 여행 때 각각 『천우기행권』 시집과 『산행일기』를 남겨, 춘천이 낙랑의 남부도위가 있던 곳이고, 고조선의 한가운데를 흘렀다는 열수는 곧 한강이라고 단정하였다.


『아방강역고』에 나타난 다산의 역사관에 대하여는 한영우(韓永愚) 님의「다산 정약용의 역사관」(한우근 외, 『정다산 연구의 현황』, 민음사, 1985)과 조성을 님의「『아방강역고』에 나타난 정약용의 역사인식」(『규장각』15, 서울대 규장각, 1992)에서 논급한 바 있고, 다산의 춘천 답사의 사실을 추적한 것으로는 본인의 『다산과 춘천』(강원대출판부, 1995)이 있다. 


다산의 고증은 문헌 실증주의의 한계 드러내


다산이 기자조선설을 비판 없이 따른 것은 실은 기자조선 이래 조선 8도가 하나의 역사적 공동체로서 줄곧 우리의 강역이었음을 입증하려는 민족주의적 역사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은 북벌론이 지닌 허구적 측면을 비판한 까닭에, 만주를 고대사의 무대로 보는 역사 인식에 대하여는 부정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산이 고조선 및 낙랑의 상고사에 깊은 관심을 보인 그 사상적인 배경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다산의 문헌학적 고증 방식은 현재의 관점에서는 찬성하기 어렵다. 상고사를 고고학적으로 연구하는 방법론과 문헌의 재검토가 가능하게 된 현 시점에서 보면, 다산의 고증은 문헌자료집성의 문헌 실증주의가 지닌 한계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현대의 다산학은 다산을 신격화하는 것이 아니라, 실사구시 정신으로 다산의 학술을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방법이 없는 학문은 학문이 아니다. 더구나 무릎 꿇고 들메끈을 고쳐드린다고 해서 다산 선생이 좋아하겠는가?  


또한 다산학은 일제의 어용학자가 다산의 주체적 역사관을 악랄하게 이용한 방식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추적할 필요가 있다. 츠다 소기치(津田左右吉)라는 일본 국수주의 학자가 정말로 다산의 저술을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만일 그가 다산을 읽고서 다산의 설을 거꾸로 이용하였다고 하면, 그것은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다. 우리가 그 사실 관계에 대해 조사하려고 하지 않는 것도 한심하다면 한심하다. 리치몬드 도서관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것이 벌써 한 달 전의 일이 되고 말았다.

      


글쓴이 / 심경호

·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 『김시습 평전』, 『한국한시의 이해』, 『한문산문의 내면풍경』, 『한시의 세계』, 『한학입문』, 『한시기행』, 『간찰 : 선비의 마음을 읽다』, 『산문기행 :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 등

· 역서 : 『불교와 유교』, 『주역철학사』, 『원중랑전집』, 『금오신화』, 『한자 백가지 이야기』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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