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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실학자였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산의
500권이 넘는 모든 저작을 읽어본 근래의 학자들이 다산을 실학자라 부르고 동시대의 학자들도 실용지학(實用之學), 실용의 학문을 크게 이룩한
학자라고 칭했습니다. 그렇지만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다산은 탁월한 경학자(經學者)였습니다. 사서육경(四書六經)의 저서를 본격적으로 연구했던
학자였으며, 주자학의 관념적인 경의 해석에서 벗어나 경험적이며 실용적이고, 실사구시적인 경의 새로운 해석을 완성해낸
학자였습니다.
‘무위이치(無爲而治)’, 행동함이 없고서도 다스려진다라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 말씀을 노장(老莊)의 논리나 불교의
논리로 해석해서, 그냥 앉아만 있어도 세상은 제대로 다스려진다고 여기던 성리학적 해석에 분노하던 다산. 그렇게 경을 해석해서 온 천하가
썩어문드러졌다고 탄식하면서, 공자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라, 순(舜) 임금이 22인의 훌륭한 인재를 적시적소에 배치하여 책임과 능력을 다해서
통치하도록 했기 때문에 본인은 외형으로 바쁘게 일하지 않은 것 같아도 세상은 제대로 다스려졌노라고, 순임금의 인재등용 정책을 찬양하는 의미이지
제왕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세상이 제대로 통치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실용적으로 경을 해석한 내용이
아닌가요.
『논어』에 “숨어 살면서는 그 뜻을 구하다가 의를 행하여 자신의 도를 달성한다”(隱居以求其志 行義以達其道)라는 말은
듣기는 했어도 그런 사람을 본적은 없다고 했을 때, 그 뜻의 ‘지(志)’를 옛날의 기록, 곧 ‘고서(古書)’라고 해석한 사람도 있는데, 그 점도
결단코 반대했습니다. “군자가 일찍이 뜻을 세웠으나 중년에 사고를 만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도망하여 숨어살다가 다시 처음의 뜻을 이룩해냄을
말한다”고 하면서, 백이숙제(伯夷叔齊)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증거를 대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타당한 풀이입니까. 초년에 품은 뜻을
사고를 당해 이루지 못하고 도망해서 숨어살다가 끝내 자신의 뜻과 꿈을 이룬 백이숙제, 천신만고의 귀양살이에서 다산학을 대성한 다산은 또 그런
인물이 아닐까요. 숨어서 뜻을 구하다가 학문을 대성한 다산, 경은 그래서 멋지고 재미있기만 합니다. 40권인 『논어고금주』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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