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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는 저서로써 말한다고 요즘에 좋은 책들이 간행되고 있으니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는 자신의 스승인 고 우전 신호열 선생과 함께 번역한 『연암집』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간행했는데, 다시
일반 출판사로 넘겨 ‘돌베개’라는 곳에서 보급판으로 세 권으로 간행하였습니다. 이 책을 김교수께서 직접 보내주셔 받아보니 역시 대단했습니다.
우전선생의 한문번역 실력에 김교수의 싱싱한 글 솜씨가 가미되었으니 책의 내용이야 묻지 않아도 알 만합니다.
그러한 역작을 번역한
김교수는 많은 분량으로 읽기가 불편하리라 믿어서인지, 다시 『연암집』 번역본의 시나 글에서 100편으로 정선해서 다시 가필하여 출간했으니, 이름
하여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라는 제목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펴냈습니다. 다산도 평소에 조선 사람이면서도 조선시는 쓰지 않고 중국의 시들만
본받아 중국시만 쓰는 것을 매우 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고사(故事)를 인용해도, 중국의 고사는 인용하면서 우리나라 국조(國朝)의 고사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못된 습성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다산은, “나는 조선 사람인걸, 즐거이 조선시를
쓰겠노라”(我是朝鮮人甘作朝鮮詩)라는 일대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이유로 다산은 많은 시에서 우리의 고사를 인용하거나,
세속의 조선 언어를 그대로 시어에 활용하는 수법을 가끔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보릿고개’를 ‘맥령(麥嶺)’이라고, ‘마파람’을
‘마아풍(馬兒風)’이라고 우리말대로 그냥 한자로 차음해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동시대에 살면서도 당파가 달랐던 탓인지 다산과 연암은
직접 만나는 교류는 없었습니다. 다산이 나이가 훨씬 아래였지만 같이 서울에 살았기에 만날 수도 있었건만, 다산이 『열하일기』를 읽었다는 기록이야
있지만 구체적인 접촉의 기회를 기록한 내용은 없습니다.
그런데 김교수의 연암 100선인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라는 책을 읽어보니
연암도 다산과 큰 차이 없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 문장가인 연암, 대 학자인 다산, 그들은 18세기를 문예부흥기로 이끌면서 그렇게
옳은 생각을 폈던 것입니다. 조선 사람이니 조선시를 써야한다는 그런 생각이 그런 때에야 나왔다는 것이 지금으로는 우습기만
합니다.
박석무 드림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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