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실학정신과 위선 / 강명관

문근영 2010. 7. 18. 07:20

제45호 (2007.5.16)


실학정신과 위선


강 명 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이른바 실학자의 문집을 읽어보면, 인재 등용의 불합리를 개탄하면서 개혁을 요구하는 주장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의 「통색의(通塞議)」한 편을 읽어보자.


신이 엎드려 삼가 생각하건대, 인재를 얻기 어렵게 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가장 빼어난 인재를 뽑아 발탁한다 해도 오히려 인재가 부족할까 걱정인데, 하물며 그 중 8,9할을 버리니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온 나라의 백성들을 인재로 길러도 인재가 자라지 못할까 걱정인데 하물며 그 중 8,9할을 폐기하니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보통의 백성이 버림받은 사람들이고, 중인(中人)이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평안도 사람과 함경도 사람들이 버림받은 사람들이고, 황해도와 개성(開城), 강화도 사람들이 또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관동 지방과 호남 지방 사람들 중 절반이 버림받은 사람들이고, 서얼(庶孼)이 또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북인(北人)과 남인(南人)은 버린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버린 것과 진배없습니다.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란 오직 문벌(門閥)이 좋은 수십 가문뿐입니다. 하지만 이 중에는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버림받은 사람이 또한 많습니다.


통쾌한 다산의 글, 조선 아닌 대한민국 얘기


서울의 노론과 소론 십수 가문을 제외하면 모두 폐기된 사람들이다. 인간을 폐기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다산은 말한다.


모든 버림을 받은 족속들은 자기 자신을 내팽개쳐 문학이나 정치, 재정, 군사에 관한 일에는 전혀 마음을 두지 않으려 하고, 오직 비분강개한 가락으로 슬픈 노래를 부르고, 술이나 마시며 되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 때문에 인재가 마침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가문에 인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고, “저 자들은 정말 버려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버림을 받은 나머지 자포자기 하는 삶을 살면, 그것을 보고 원래 저런 놈이니 버린 것이 마땅하다 한다. 악순환이다. 하지만 그 원인의 제공자는 누구란 말인가. 권력과 부를 독점한 자들이 아니었던가. 다산의 말을 더 들어보자.


아아, 이 어찌 본디 그러한 것이겠습니까? 어찌 천지가 정기를 모으고 산천이 그 진기를 길러 꼭 수십 집 사람에게만 쏟아주고, 더럽고 탁한 기운일랑 나머지 사람에게 뿌리는 것이겠습니까. 혹 아니라면 그 태어난 지방을 탓하여 사람을 버리는 것입니까.


통쾌하구나. 나는 다산이 남긴 문자 중에서 이 글이 가장 통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그런가. 이 「통색의」 한 편은 조선이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을 두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여성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버린 사람이다. 지방 국민들이 모두 버린 사람이고, 서울에 살되 강남에 살지 않는 사람 역시 대부분 버린 사람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 역시 모두 버린 사람이다. 대학을 나왔으되, 지방대학을 나왔으면 버린 사람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왔으되 모모한 대학들을 나오지 않았으면 모두 버린 사람이다. 모모한 대학들을 나왔으되, 무슨 특정한 한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면 역시 버린 사람이다. 아니 그런가?


내면화되지 않은 실학을 말한다? 실학은 무슨 실학!


요즘 ‘실학’을 두고 학계의 논쟁이 한창이다. 한데 이상하지 않은가. 실학은 그렇게 열심히 연구하면서 왜 실학의 최고봉인 다산선생께서 하신 말씀은 새겨듣지 않는가. 초중등학교 교과서에 실학이 실려 있고, 실학정신 운운하는 소리가 신문이며 방송에 끊이지 않지만, 실학은 그냥 딴 나라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실학 연구로 명성과 권위를 누리면서 자신은 전혀 실학정신에 의식화되지 않고 말도 되지 아니하는 온갖 핑계로 인재를 내팽개치는 학자님들도 허다하게 본다. 내면화되지 않은 실학을 운위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위선일 따름이다. 실학은 무슨 실학이란 말인가.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푸른역사,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소명출판,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길, 2006 등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