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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대 정치를 논하다보면 언제나 요순(堯舜)정치를
거론하게 되고, 그런 요순정치의 전형(典形)은 주(周)나라를 듭니다. 주나라의 정치와 문물제도를 제대로 완비시킨 인물로는 주공(周公)이라는
성인(聖人) 정치인을 거명합니다. 때문에 공자(孔子)는 자신이 가장 숭배하고 존경하면서 따르고 본받고 싶은 인물이 주공이라 여기면서, 젊은
날에는 주공 같은 이상적인 정치를 펴고 싶어서 꿈에 자주 주공이 나타났건만, 나이가 들고 노쇠해지자 주공이 꿈에도 자주 나타나지 않음을 탄식했던
것입니다.
꿈속에서 만나는 일 말고도, 공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주(周)나라의 전장과 법도를 따르겠다”라는 뜻으로
‘종주(從周)’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공자의 뜻을 따르려는 생각이었는지, 다산도 여러 곳에서 주나라만이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전장과 법도를 마련했던 나라라고 여기면서, 한(漢)나라 이래의 유자들이 입만 열면 “주나라는 질(質)보다는 문(文 : 예·악·문물제도)을 너무
숭상했다”라고 말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면서 그런 그릇된 판단에 가차없는 비판을 가했습니다.
본디 공자의 『논어』에 ‘문질(文質)’에
대한 높은 견해가 있습니다. 문과 질이 치우침 없이 함께 발달해야만 좋은 인물도 되고 나라도 된다는 뜻인데, 한쪽으로 치우치면 절대로 안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주나라야말로 문질이 균등하게 발달하여 공자가 가장 이상적으로 여겼던 나라인데, 그렇지 않다는 판단 때문에 세상이 망가졌다는 것이
다산의 경학논리였습니다.
“한나라 유자들이 주나라는 문에 치우쳤으니 마땅히 질로써 교정해야한다라고 말하면서 예(禮)가 훼손되고
악(樂)이 없어져 한결같이 진(秦)의 전철을 밟느라 요순정치는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지 못하고 말았다”(『논어고금주』)라는 개탄의 주장을 폈던
것이 다산입니다.
질이 높은 수준의 전장과 법도를 통하여 제대로 수식하고 통제해야만 요순이나 주공의 정치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입만 살아서 말로만 싸우는 정치는 그만 두고 아름답고 찬란한 전장과 법도를 제대로 마련하는 정치가 복원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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