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로서의
시대에 대한 책임의식
배
우 성(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영·정조시대를
풍미한 서얼 출신 이덕무(李德懋), 그리고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1861년)의 작자 김정호(金正浩). 두 사람은 살던 시대도,
주력했던 학문 분야도 서로 달랐지만, 양반이 아니면서도 시대에 대한 나름대로의 책임의식을 가졌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 공통점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면 두 사람을 엮어주는 어떤 고리가 있기라도 했던 것일까.
서얼인
이덕무가 ‘선비가 지켜야 할 작은 예절’을 강조한 까닭은?
이덕무가
『사소절』(士小節)이라는 책을 펴 낸 것은 1775년(영조 51)의 일이었다. 책 제목을 풀어 보면 ‘선비가 지켜야 할 사소한 예절’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덕무는 선비들이 사소한 예절에 구애되지 않는 풍조가 경전의 뜻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사소한 일까지도 예절로써 한계를 정하고
실천한 주나라의 전통이 무너진 이후, 선비들이 사소한 예절의 중요성을 거들떠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자(朱子)의 『소학』(小學)을 읽고 실천해
온 이덕무는 주자가 사소한 예절에 대해 강조한 취지를 이어받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서얼인
이덕무가 주자를 거론하면서 선비 집안, 특히 선비가 지켜야 할 작은 예절을 강조한 것은 왜일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이덕무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정조는 이덕무를 검서관으로 발탁했다. 그러나 그런 정조조차 검서관들을 전통적인 의미의 선비로 여기지는 않았다. 이덕무는
이서구(李書九)에게 보낸 편지에서 “학자는 아니지만 주자의 『근사록』(近思錄)을 항상 곁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선비로서의 능력을
갖추었으면서도 선비로 자임할 수 없는 세상. 그것은 정조 시대 중인 지식인들이 닥친 엄연한 현실이었다.
중인들은
양반문화의 상징이었던 문학 분야에 뛰어들어 문학 활동을 벌임으로써 현실의 굴레를 벗어던지려 했다. 그들은 시사(詩社)라는 문학모임을 결성하고
중인의 전기를 편찬하기도 했다. 양반들은 그들의 그런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중인들의 체제 내적인 활동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정조시대 검서관들도 명문가 자제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문학 활동을 펼쳐 나갔다.
양반들이
중인들의 문학활동을 후원하는 양상은 세도정치기에도 계속되었다. 19세기 중반 중인시사의 맹주들과 어울리던 인물 가운데 최성환(崔 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역시
중인이었던 그는 이덕무의 『사소절』을 다시 간행했다. 최성환은 중인들이 수행해야 할 시대적 책임의식을 자각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덕무의
『사소절』을 새롭게 재발견했던 것이다. 『사소절』이 간행되자 최한기(崔漢綺)가 이 책을 들고 충주에 살던 이규경(李圭景)을 찾았다. 이규경은
이덕무의 손자이다. 『사소절』은 최한기·이규경 등에게도 좋은 참고서가 되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중인 선비’로서 시대적 책임의식의 소산
공교롭게도
이 세 사람은 김정호와 직·간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은
최성환이었다. 최성환은 김정호와 함께 『여도비지』(輿圖備志)라는 지리지를 펴냈다. 이 책에는 천문학상의 좌표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수치들은
<대동여지도>에 충실하게 구현되었다.
최성환은
중인시사를 후원했던 양반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특히 박종보 집안에서 활자를 빌어다 책을 찍거나, 남병철의 책에 글을 싣는 등
당대의 세도가 집안들과 잘 어울렸다.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이기도 했던 남병철의 친구들 중에는 박규수, 신헌, 그리고 정약용의 장남 정학연 등도
있었다. 신헌은 뒷날 비변사 등에 소장된 각종 관찬지도를 김정호에게 열람하게 함으로써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김정호는 최성환을 통해 남병철을 알게 되고, 남병철과 친분이 있었던 신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동여지도>의
탄생과정에는 이렇듯 양반들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동여지도>를 가능하게 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중인 선비’로서 시대과제에 대해 분명한 역할이 필요하다는 김정호 자신의 자각이었다. 김정호가 최성환과 공유하고 있었던 그 생각은
이덕무가 『사소절』에서 말하려 했던 소명의식, 바로 그것이기도 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의 서문에서 손자(孫子)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이를 말미암아서 쳐들어오는 적을 막는 일을 돕고 사나운 무리들을 제거하며, 시절이 평화로우면 이로써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리니
모두 내 글을 따라서 취하는 것이 있을 따름이다.”
글쓴이
/ 배우성
·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
저서 :『조선후기 국토관과천하관의 변화』, 일지사, 1998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공저), 효형출판,
1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