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유홍준의 국보순례] [12] 궁궐의 박석(薄石)|

문근영 2010. 7. 2. 10:41

[유홍준의 국보순례] [12] 궁궐의 박석(薄石)

유홍준 명지대 교수·미술사

입력 : 2009.06.18 03:00 / 수정 : 2009.06.19 09:29

 

우리 궁궐 건축이 남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데는 박석(薄石 또는 博石)이 큰 몫을 하고 있다. 박석은 고급 포장 재료이다. 넓적한 화강암 돌판으로 두께는 보통 12cm이고 넓이는 구들장의 두 배 정도다. 박석은 주로 궁궐 건축에 사용되어 근정전의 앞마당인 전정(殿庭), 종묘의 월대(月臺), 왕릉의 진입로인 참도(參道) 등에 깔려 있다. 서울의 옛 지명에 박석고개가 여럿 나오는데 이는 대개 왕릉으로 가는 고갯길에 박석을 깔아 생긴 이름이다.

포장재로서 박석은 그 기능이 아주 탁월하다. 화강암판이어서 잘 깨지지 않고, 빛깔이 잿빛이어서 눈에 거슬리지 않으며 표면이 적당히 우툴두툴하여 미끄럼을 방지해주고 햇빛을 난반사시켜 땡볕에도 눈부심이 없다.

박석은 이처럼 포장재료로서 탁월한 기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인공적인 직선이 구사된 궁궐 건축에 자연적인 맛을 살려 자연과 인공의 어울림을 꾀한 우리의 건축 미학에 잘 맞아떨어진다. 내가 외국의 박물관장이나 미술평론가를 데리고 경복궁에 갈 때면 그들은 근정전의 박석을 보면서 한결같이 포스트 모던아트에서나 볼 수 있는 탁월한 감각이라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언젠가 경복궁관리소장에게 근정전은 어느 때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느냐고 물었더니 장마철 큰 비가 내릴 때 빗물이 박석의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박석의 자연스러움을 오히려 마감에 충실하지 못한 우리 건축의 폐단이라고 불만을 말하기도 한다. 이런 분들은 화강석을 반듯하게 다듬어 깐 창덕궁 인정전을 보면 그 기능은 고사하고 얼마나 멋이 없는지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창덕궁 인정전의 전정은 일제가 잔디를 입혔던 것을 1970년대에 복원하면서 지금의 화강석으로 깔아 놓은 것이다. 그때만 해도 박석을 구할 수 없었다.

문화재청에서는 몇 년간 '조선왕조실록'과 의궤(儀軌)를 조사하여 박석 광산이 강화도 매음리(일명 그을섬)인 것을 확인하고 바야흐로 채석을 시작하여 광화문 월대 복원부터 다시 박석을 깔기로 했다. 박석의 미학은 이리하여 다시 이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