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6.10 22:33 / 수정 : 2009.06.10 23:34
지난 6일 재개발 사업이 한창인 서울 종로구 청진동 '피맛골'에서 당장 나라의 보물로 지정해도 한 치 모자람이 없는 조선 초기 순백자 항아리 석 점이 발굴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기사를 본 나의 지인 중에 백자의 빛깔이 눈부시고 형태도 듬직해서 이제까지 보아온 백자와는 다른 멋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어, 나는 일반인의 눈에도 그런 미감이 읽히나 자못 놀랐다.
사실상 조선백자의 세계는 그 시대정신과 취미를 반영하며 변하였다. 백자의 생명력이라 할 흰빛의 변화를 보면 15세기 성종 때 백자는 이른바 정백색(正白色)이라는 맑은 흰빛을 띠고 있다. 이것이 16세기 중종 때가 되면 따뜻한 아이보리 빛으로 세련되고, 임진·병자의 양란(兩亂)을 거치면서 17세기 인조 때는 시멘트 빛에 가까운 회백색(灰白色)으로 거칠어진다. 그러나 18세기 영조 연간이 되면 다시 세련되어 뽀얀 설백색(雪白色)의 저 유명한 금사리(金沙里·경기도 광주시 남종면)가마의 달항아리가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정조 때는 말할 수 없이 부드러운 유백색(乳白色)의 우윳빛 분원(分院)백자가 나오게 되고, 19세기로 들어서면 청백색(靑白色)으로 변하면서 조선백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조선백자의 이런 변화는 문화사적 흐름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15세기 백자의 정백색은 국초(國初)의 기상을, 16세기 상앗빛 백자는 성리학의 세련을, 17세기 회백색은 전후(戰後) 국가재건의 안간힘을, 18세기 설백색과 유백색은 문예부흥기의 난숙함을, 19세기의 청백색은 왕조 말기의 황혼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것이 '양식사(樣式史)로서의 미술사'의 시각에서 본 조선백자의 흐름이다.
'피맛골'에서 나온 백자항아리가 이제까지 보아온 백자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은, 15세기 순백자 항아리는 아주 드문 편이어서 일반인들은 볼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피맛골' 백자항아리 발굴기사를 보면서 속으로라도 그런 인상을 받으신 분이 있다면 그분은 예술을 보는 안목이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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