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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엽에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性理學), 즉 주자학은 조선왕조가 건국되면서 국가적 이념으로 정착되어 무서운 속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였습니다. 이름이 학자라면 성리학연구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으며, 과거제도를 통해 공직자를 선발하였기 때문에 그에 부응하여 시나 문장공부에도 등한할 수 없었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과거를 거치지 않고는 벼슬에 등용될 수 없었기에, 국가를 운영하는 일로 과거제도만큼 중요한 일이 없었습니다. 문제점이 노출되어 뜻있는 선비나 벼슬아치들은 과거제도의 개혁을 부르짖었으나, 그래도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이전에는 그 문제가 그렇게 큰 이슈로 거론된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양란(兩亂)이후에는 갈수록 타락하고 협잡이 개재되는 과거제도는 비판의 대상으로 크게 부각됩니다.
그 무렵 새롭게 등장하던 학풍의 하나이던 실학사상은 반계 유형원에서 큰 발원이 되는데, 바로 반계는 그의 『반계수록』이라는 희대의 저서에서나 다른 단편적인 논문에서 과거제도의 혁파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계의 후계자들인 성호 이익이나 다산 정약용에 이르면 훨씬 더 강력하게 과거제도를 비판하면서 본령(本領)을 되찾아야만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진다고 주장합니다.
“일찌기 과거제도의 폐단의 근원을 묵묵히 연구해보니 오직 본령(本領)이 잘못되었습니다. 본령이란 무얼까요? 이는 오직 우리 조선에는 과거제도만 있고 천거제도가 없다는 것입니다.(唯我國 有科而無擧耳) 과거란 사람의 기능을 분별하여 등급을 매기는 것이며, 천거란 사람의 재능을 천거해서 발탁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법은 자기 스스로 시험에 응하지 누구의 천거가 있다는 것입니까? 때문에 과거만 있지 천거는 없다는 것입니다…”(辭正言兼陳科弊疏)라고 다산은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공거(貢擧)제도를 확립하여 지역주민이나 어진 이들의 천거를 받아 훌륭한 인재가 발탁되도록 하자는 주장은 요순시대부터 가장 합리적인 인재등용책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임금에게 아뢸 기회만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몹쓸 제도인 과거제도를 혁파하여 참다운 인재발탁의 기회를 넓히자고 주장했습니다. 국가고시로만 인재를 고르는 제도를 벗어나 합리적인 천거제도가 지금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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