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실학산책] 우주개발과 '살만한 곳' / 이지양

문근영 2010. 6. 20. 14:18

우주개발과 ‘살만한 곳’

                          

이지양(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7월 20일자 뉴스에서 앞으로 '대한민국 우주청'을 설립,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사업을 종합 조정하고, 총괄 관리 감독하게 하는 방안이 추진될 전망이라는 보도를 접했다. 그 보도를 접하는 순간, 미항공우주국(NASA), 일본 니가타(新潟) 지진, ‘살만한 곳[可居地]’, 츠나미라는 말이 동시에 떠올랐다. 미항공우주국 같은 곳을 기대하는 마음과, 다른 한편의 불안한 마음이 동시 작용을 한 것이다. 일본에 지진이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 동해안도 안심할 수 없다면서 한반도의 지진 가능성도 언급되지만, 별 다른 대비책보다는 그때그때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지나치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사는 이 땅에 대한 이해와 대비책이 부족하여 장마철만 되어도 불안감이 심해지는 현실에서, ‘우주개발’ ‘우주청’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판타스틱’하게 느껴졌다. 과학기술이 판타스틱한 영역을  현실로 만들어온 역사를 생각하면, 그것은 새로운 기대를 품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곳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에 대해 새삼 문제의식을 환기하고 싶다.


가공할 츠나미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부족의 오래된 지식

  

2004년에 인도양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가공할 츠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후, 벵갈만의 안다만 제도가 입은 극심한 타격 가운데서도 그 지역의 오랜 토착민 부족은 그 무시무시한 홍수에서도 희생자 없이 그대로 살아남았다고 한다.《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취재에 의하면, 그곳 토착민 부족들이 그곳의 바다와 땅, 그리고 동물들의 움직임에 대해 가진 지식은 그 종족이 그 섬에서 살아온 6만년 동안 축적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구전 역사는 지진의 첫 징조가 느껴지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고 하며, 섬의 다양한 야생식품들에 의존하는 수렵과 채집의 생활 방식은 츠나미가 몰아쳤을 때 깊고 높은 산에 대피해 있는 동안 그들이 살아남게 해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삶과 삶의 현장에 밀착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근대적 수입지식의 공허한 범람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서구의 양심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다지 드물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런 글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18세기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 선생의 ‘살만한 곳을 기획하는 산수(山水) 관점’을 주목하게 만든다. 성호 선생은 따로 지리지를 편찬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관점으로 산수 자연을 보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생활과 풍속을 관련지어 실용적으로 사고한 글을 자못 많이 남겼다.『성호사설』제8권 <인사문(人事門)>「생재(生財)」편이라든가,『성호사설』제3권 <천지문(天地門)>의「김해속(金海俗)」「영남속(嶺南俗)」「양남수세(兩南水勢)」같은 편이  바로 그러한 지리적 관점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생활 조건을 고찰한 글이다. 성호의 삼종손인 이중환 역시 『택리지』에서 자연을 인간생활의 터전이라는 실용적 관점에서 보고, 그 구체적 세부 기준을 지리(地理)·생리(生利)·인심(人心)·산수(山水)로 삼은 점에서, 성호의 산수 관점과 거의 일치한다. 이런 산수 자연관점이야말로 지식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특히 성호선생은 도성의 방어적 기능과 주거 기능을 일치시키는 문제에 대해 비상한 문제의식을 반평생 품고 있었다.『성호사설』 제1권 <천지문(天地門)> 「도성(都城)」편에 그러한 문제의식이 언급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1712년 32세에 쓴「유북한기(游北漢記)」에도 동일한 문제의식이 깃들어 있으며, 1744년(64세)과 1745년(65세)에 농포(農圃) 정상기(鄭尙驥, 1678~1752)에게 보낸 편지에도 같은 문제의식이 서술되어 있다. 도성을 도성답게 만들자면, 즉 백성들이 유사시에 방어와 수비를 하면서 그곳에서 살 수 있게 하자면, 북한산의 지세와 북한산성의 튼튼함을 믿지 말고 백성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를 30년 이상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1744년의 편지에는 “지금 당장은 딱 들어맞는 방책이 없다”고 했지만,『성호사설』제10권 <인사문(人事門)>「산성수과(山城樹果)」는 그러한 문제에 나름대로 대책을 찾아내 제시하고 있다. 북한산에 해송(海松)을 심어 북한산과 북한산성, 그리고 도성을 유기적으로 연결 지어 국가안보의 백년대계를 기획했던 것이다. 성호 선생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다른 실학자에게도 인상 깊었던 것 같다. 18세기 호남의 실학자 황윤석의『이재난고』 1770년 6월 17일조의 일기에 성호선생의 문제의식이 인용 서술되어 있으니 말이다.

  

발 딛고 사는 삶의 터전에 대한 이해와 토착정보가 우선


실학자들이 국토지리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성과를 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런데 그것을 근대적 분과학문으로서 지리학적 기초 정도로 여길 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적 전통이며, 지식의 본질을 꿰뚫는 작업인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같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지식이란 그가 살아가는 현장이나 상황에 밀착되어 있는 것이다. 어딘가 먼먼 지역,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한 번도 발 디딜 가능성이 없는 지역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호기심의 영역이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지역에 대한 이해는 당장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까닭에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올바른 지식 정보, 역사, 풍속, 지리, 물산, 자원, 그 외 경제활동을 포괄한 총체적 누적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대생활의 특징인 정보·통신·교통의 발달로 인간의 이동이 더욱 가속화될수록 정말 필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환경에 대한 누적된 토착정보일 것이다. 이 땅의 자연 환경에 대한 누적된 정보와 지하자원,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고려한 정확한 이해는 우주청보다 우선순위에 놓이지 않을까. 멀리서가 아니라 이 땅 자체에서 ‘살만한 곳’을 찾고, ‘더욱 살만한 곳’으로 기획하는 노력을 진작부터 해온 이익 선생과 이중환 선생의 혜안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글쓴이 / 이지양

·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 논문:「연암 박지원의 생활 특징과 문화예술사상」(『한국한문학연구』36집, 2005)외 다수

· 번역서(공역): 『역주 매천야록(상)(하)』,문학과지성사,2005

               『역주 이옥전집』,소명출판,2001

               『조선후기 문집의 음악사료』,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2000

               『조희룡전집』,한길아트,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