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茶山이야기] 다산의 경학(經學)과 정법(政法) / 박석무

문근영 2010. 6. 19. 13:11

다산의 경학(經學)과 정법(政法)


1936년은 일본의 식민통치로 모든 백성들이 탄압에 신음하면서 수모와 굴욕으로 치를 떨던 시절입니다. 그해는 또 다산선생의 서세 100년을 맞는 해였습니다. 민족의 지사(志士)들은 독립과 해방의 길을 찾느라 고심탄회의 심정으로 애를 끓이고 있을 때, 위당 정인보 같은 분들은 조선의 얼을 찾고 민족혼을 찾기 위해 조선학, 조선심을 불러일으키려고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학문과 사상을 천착하느라 불철주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무렵 정인보·안재홍 등 애국지사들은 서세 백년을 맞도록 아직 간행되지 못한 다산의 저작들을 간행하여 다산정신을 통한 민족혼의 발양을 꾀하기에 이릅니다. 신문을 통해 다산이 어떤 분이고 그의 사상과 철학이 어떤 것인가를 알리느라고 온통 심혈을 기울이던 때입니다. 마침내 1938년 76책의 『여유당전서』가 활자로 간행되어 세상에 빛을 본 것은 모두 그들의 힘이었습니다. 1934년 9월 10일부터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정인보의 글이야말로 다산연구의 고전에 속하는 대문자였습니다. “선생의 학문은 경학(經學)이면서 정법(政法)이라 이로써 민국(民國)의 실익(實益)을 자(資)할 만치 실구(實究)·실해(實解)하는 공부이다”라고 하여 철학사상인 경학과 정치·경제·법률학인 정법을 별개로 구별하지 않고 경학이건, 정법이건 백성에 실익이 있는 내용으로만 연구를 거듭했다고 보았습니다.

“선생 학문의 종지(宗旨)는 ‘신아구방(新我舊邦 : 나라를 혁신함)’의 네 글자, 나라가 날로 썩어가고 달로 문드러지는 이유가 오직 부실(不實)에 있으니 구(舊)를 신(新)하자 함은 ‘실(實)’로 부실을 대(代)함에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학(學)이면 실학(實學), 행(行)이면 실행(實行), 정(政)이면 실정(實政), 사(事)면 실사(實事), 심지어 책의 일언일구, 일물(一物)의 일방일원(一方一圓)에 이르기까지 모두 ‘실’을 구(究)하였다”라고 설명하여, 다산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명백하게 설명했습니다. 역시 위당의 다산학에 대한 개척은 대단했던 것입니다.

1938년에 『여유당전서』가 출판된 후 1939년의 「여유당전서총서」라는 위당의 해제는 후학들에게 다산학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준 총서(總 )였음에 분명합니다. 학자의 공은 그래서 위대합니다.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