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는 장사를 하면 안 되는가?
장 승 구(세명대 교양학부 교수)
선비와 장사! 우리는 선비하면 책이나 보고 아이들을 가르치기나 하는 백면서생을 떠올린다. 그리고 선비가 돈을 알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반면 상인하면 시장에서 돈벌이에 열중할 뿐 교양이나 예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선비는 선비대로 상인은 상인대로 따로 놀고, 같이 어울리면 뭔가 서로 불편한 듯 생각한다. 왜 선비는 장사를 하면 안 되는가? 왜 상인은 선비처럼 학문과 교양을 갖추면 안 되는가? 선비가 장사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이익 추구와 상인에 대한 치우친 생각
조선시대 유교사회에서는 중농억상(重農抑商) 정책이 추진되었다. 그래서 선비는 가난해도 농사는 지을지언정 장사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선비들은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고 믿었다. 장사하는 상인은 이익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인이 되면 마치 선비로부터 멀어지는 것처럼 생각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과연 근거가 있는가? 유교는 과연 상업이나 경제를 무시하였을까?
중국에서는 장사하는 기술을 다른 말로 ‘자공지술(子貢之術)’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공(子貢)은 공자의 수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자공은 이재에 밝아 장사에 뛰어난 수완을 보여서 많은 부를 모았고, 공자의 외유를 경제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래서 자공은 중국에서는 상인들에게 신처럼 숭배된다. 공자 자신도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나서 그 뒤에 가르쳐야 한다는 사상(先富而後敎)을 가졌으니 공자가 결코 경제문제를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자와 달리 맹자는 이른바 “하필왈리(何必曰利)”를 내세워 왕이나 사대부의 이익 추구를 경고하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맹자의 이 말만 믿고 이(利)에 대해서 말하거나 이(利)를 추구하면 소인이라고 불릴까봐 이(利)를 입에 올리기를 매우 조심하였다. 실제로는 이(利)를 좋아하면서도 남에게 소인으로 불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利)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더구나 이익 추구를 생업으로 하는 상인이 되어볼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같은 유교권이라도 중국과 일본은 상업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달랐다. 중국은 명(明) · 청(淸)대로 오면서 ‘유상(儒商)’이라는 말이 생겼다. 선비 가운데 과거를 통해 벼슬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상인의 길을 걷는 사람을 유상이라고 불렀다. 유상은 장사를 하면서도 유교 윤리를 토대로 도덕적으로 상거래를 하여서 신용을 쌓고 많은 부를 모았다. 부를 모은 유상들 가운데는 어렵게 번 돈을 국가나 지역사회를 위한 공익사업에 기부하여서, 나라로부터 공명첩을 받아서 관리와 같은 명예를 얻기도 하였다. 유상은 유교 도덕과 상업이 결코 모순이 아니라 잘 조화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인 관중과 포숙아도 벼슬하기 전에는 같이 동업으로 장사를 하다가 나중에 벼슬길에 올라 대정치가로 크게 성공하였다.
일본 최대 상업도시 오사카에는 상인을 교육하는 회덕당(懷德堂)이라는 서원이 1724년에 세워졌다. 회덕당에서는 오사카 지역의 상인을 모아서 상인들이 지켜야 할 도덕과 그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강의하였고, 상인들도 교육을 통해 자기 직업에 대해 긍지를 가졌다. 일본 경제의 발달은 이런 상인 도덕의 정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국제무역이 활발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해외통상이 미약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유교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실학자들 가운데는 상업을 중시하는 학자들이 있었는데, 특히 박제가는『북학의』에서 소비를 장려하고 상업의 활성화를 통한 경제 번영을 주장하고, 해외통상을 적극 역설하였다.
무엇을 하든, 생업에 힘쓰면서 도덕과 학문을 실천해야
요즘 ‘욘족’이 뜨고 있다고 한다. 욘족은 젊고 부자이면서도 졸부티를 내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재산을 사회 자선사업에 희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빌 게이츠도 욘족의 하나이다. 선비도 이익 추구 자체를 멀리할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부를 쌓아서 좋은 일을 위해서 아름답게 그것을 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선비가 평소에 학문과 도덕을 익히는 것은 사회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기 위함이다. 부득이 한 경우에 독선기신(獨善其身) 할 수도 있지만, 가능하다면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실생활에서 생업에 힘쓰는 가운데 평소 연마한 도덕과 학문을 실천하여야 하지 않을까?
다산 정약용이 안타까워했던 것은 도덕과 학문이 실제 생활의 행사(行事)와 유리되어 따로 노는 것이었다. 참된 선비라면 상업이든 공업이든 농업이든 자기가 하는 생업 속에서 도덕과 학문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닐까? 실학정신에 비추어 보면 선비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어떤 태도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성심성의와 공경하는 태도를 가지고 어진 마음과 바른 정신으로 일을 한다면 무엇을 하든지 참된 열린 선비가 아닐까?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도 다양한 꿈과 새로운 상상력으로 미래에 도전하는 열린 선비가 되어야 하겠고, 이것이 실학의 선비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글쓴이 / 장승구
· 세명대학교(교양학부 부교수, 한국철학 전공)
· 저서: 『삶과 철학』, 이회, 1996
『정약용과 실천의 철학』, 서광사, 2001
『다산경학의 현대적 이해』, 심산, 2004(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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