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영혼

반드시 치유받아야 할 교회의 친일(親日) 트라우마

문근영 2010. 6. 18. 11:34

반드시 치유받아야 할 교회의 친일(親日) 트라우마

 

[정중규 칼럼]

 

2009년 11월 15일 (일) 정중규 mugeoul@hanmail.net

 

 

   
▲광주대목구 와키다 주교의 주교 서품식 후 찍은 기념사진. (1943.2.6)

 

 

과거의 흔적은 얼마나 무서운가. 한번 겪은 것은 우리의 뇌리, 우리의 몸, 우리의 존재 속 어딘가에 박혀 남아 있다. 특히 불행했던 기억, 그것도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기억이라면 살인자 맥베스의 손에 묻은 핏물이 씻고 씻어도 지워지지 않듯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마치 박힌 가시처럼 살 속을 휘젓고 다니며 우리 삶을 할퀴고 곪게 만든다.

 

이미 저지러진 과거의 행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기억을 억지로 덮거나 지우려 들면 의식차원에선 사라지지만, 무의식으로 내려가 괴롭힌다. 악몽과 같은 꿈은 미해결 과제를 무의식 차원에서 각성시켜 현실적인 해결을 도모해 치유하라는 재촉의 메시지인 것이다.

결국 그 멍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부끄러운 과거와 대면하려는 용기를 지니고서 저질렀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며 현실적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과거를 바로잡는 것이 꼭 단죄만이 아닌 것은 거기 화해와 일치의 전망이 펼쳐지는 까닭이다.

회상과 화해 : 교회의 과거 범죄에 대한 정화의식

비록 선언적 차원이긴 했지만, 새 밀레니엄 시대가 시작되던 지난 2000년 3월 12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 바실리카 성당에서 봉헌된 ‘용서의 날’ 미사를 통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천년 교회사에서 처음으로 교회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핑계로 인류에게 저지른 7가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던 <회상과 화해 : 교회의 과거 범죄에 대한 정화의식>의 의미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나치정권의 유대인 강제연행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묵시적 동조, 피로 점철된 십자군 원정과 그리스도교 세계의 분열,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심문을 비롯한 중세의 종교재판,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방조, 다른 종교와의 반목, 여성에 대한 억압, 1·2차 세계대전 방관 등의 역사적인 과오들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그에 대한 용서를 구했으며 교황의 이런 행동은 그 당시 전세계적으로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교회에 상처를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의 빛을 던져준 것이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거듭날 수는 없다.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진정한 참회를 통한 기억의 치유는 궁극적으로 화해와 일치로 가는 길이다.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친일행위 청산도 그런 길을 밟아가야 한다.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덮어두려는 것은 무모하고 우매한 짓일 따름이다. 청산 없는 청산을 꿈꾸어선 안 될 것이다. 무엇이든 밟아갈 것은 밟아가는 것이 순리다.

3·1운동 기미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에는 왜 천주교 사제가 없을까

내 어린 시절 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것이 3·1운동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천주교 사제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불교에서는 한용운 스님이, 천도교에서는 아예 손병희 교주가, 심지어 개신교조차 목사들이 보이는데 우리 천주교는 뭐했나 싶어, 어린 마음에 타종교 친구들 사이에서 열등감으로 속상해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중근 의사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또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자연스레 그 때 그 시절 한국천주교회의 현실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면서 ‘33인 명단’에 대한 의문점을 풀었던 그 시기였다.

 

 

   
▲뒤로 수갑이 채워지고 쇠사슬에 묶인 안중근.

 


안중근 토마스를 받아줄 가슴은 교회 안 그 어디에도 없었다

기억의 뿌리란 또 얼마나 무서운가. 일제 때 한국천주교회의 교단적 친일행위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거기엔 이 땅을 선교지역으로 삼아 속속 입국한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한 선행학습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제국주의 출신의 선교사들에게 일제 식민지 정책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오히려 그에 저항하는 조선인들의 움직임이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 것(螳螂拒轍)과 같이 무모한,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는 철없는 짓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지도받아 사제가 되고 교회의 지도층에 오른 자들이 달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몇몇의 깨어있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이미 제국의 신민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안중근 의사와 같은 깨어난 평신도는 그 시절 우리 교회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우리 민족은 물론이고 세계평화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자 특파독립대장’인 안중근을 받아줄 가슴은 그 시절 교회 그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 사형선고를 받고 임종을 앞둔 안중근 토마스의 영혼에 영원한 안식을 기원해줄 입술조차 교회 안에는 없었다. 가롯 유다조차 나그네 무덤에라도 묻혔는데 그는 묻힐 무덤조차 없었고, 결국 이제껏 그의 무덤은 행방불명이다.

 

뮈텔 주교를 비롯한 선교사들에 의해 휘둘린 그 시절 한국천주교회는 민족현실에 어두운 눈 먼 이방인처럼 되었고, 기어이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았다. 뮈텔 주교가 독립운동하는 신자 명단을 일제에 넘겨주었다거나, 안중근 집안에 세례 준 빌렘 신부를 성무 정지시키고 그마저 교황청에서 반대하자 이번엔 아예 본국으로 추방시켰다는 이야기는 차라리 눈감고 싶어지는 목불인견의 추악한 과거사이다.

일제시대의 교회로 회귀하는 듯한 교회의 현주소

물론 한국천주교회도 대희년을 앞둔 지난 1999년 12월 3일, 역사적인 과거사 반성 문건인 <쇄신과 화해>를 주교회의 명의로 발표하고 각 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참회예식을 통해 역사와 민족 앞에 교회 구성원들이 소홀했던 점과 잘못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 교회는 보수화의 물결 속에 자신을 맡기며, 다시 민족과 역사 현실에 대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다’는 삼불(三不)원숭이와 같았던 일제시대의 교회로 회귀하는 모습이다. 동일한 재개발 문제지만 교회 지도층의 가슴에는 전혀 다르게 와 닿은 가좌동성당과 용산참사, 이는 지금 우리 교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알려주는 서글픈 좌표이다. 여기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눈길은 어디 있는가. 이런 점이 대희년에 행한 반성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며, 원죄의 뿌리가 얼마나 질긴지 실감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과연 그 원죄의 뿌리는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깊어져 교회가 이데올로기의 앞잡이 되어 반공멸공의 꼭두놀음을 하는 잘못을 다시 저지르게 만든다. 이번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장면 씨가 단독정부 수립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한 사실은 눈여겨 볼 일이다. 이처럼 원죄는 유전되는 것이고, 그러기에 원죄인 것이다.

한국교회, 민족적 트라우마 반드시 치유해야

친일행위의 죄악은 단순히 민족적 배반이라는 부도덕함만이 아니라, 그것이 멍에에 멍에를 얹어주듯 우리 민중들의 고통을 배가시키는데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그 시대 친일행각을 일삼는 교회를 바라보는 민중들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그러기에 친일문제에 대한 교회가 지닌 내적 부담도 힘들겠지만, 민중 아니 우리 민족의 뇌리에 박힌 아픈 기억은 더 심각하다. 그들의 트라우마를 치유시켜야 한다.

 

‘천만 개신교 신자’에 ‘오백만 천주교 신자’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물 위의 기름처럼 온전히 섞이지 못하고 이방종교처럼 여겨지며 아직 진정한 토착화(한국화)마저 이루어지지 못하는 데는 그 또한 한 원인이 되었으리라. 마치 원죄처럼 친일행위가 우리 교회와 민족을 혼연일체 되지 못하게 하는 꺼림칙한 장애물로 작용했던 것이다.

 

물론 이번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이름인 노기남 대주교, 김명제 신부, 김윤근 신부, 신인식 신부, 오기선 신부, 장면, 남상철 같은 교회의 어느 시기 교계를 대표했던 지도자와 지도층의 잘못을 교계 차원에서 인정하고 고백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누구를 단죄하자는 것이 아니라 <친일인명사전>의 취지대로 “부일협력이라는 치욕스런 행위를 정확히 기록하고 이를 용감하게 대면해 미래로 나아가는 지름길로 삼는”데 그 속뜻이 있다. 그리하여 교계 차원에서의 자기 살을 깎는 용기 어린 결단이 요청된다. 아픔을 수반하지 않고 바른길로 들어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가 우리 민족 안에 뿌리내리고 이 민족의 역사와 하나 되어 나아가려면 친일행위에 대한 참회와 용서 그 기억의 치유를 통해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민족복음화의 전망도 비로소 그럴 때 활짝 펼쳐질 것이다. 언젠가 교회의 눈길에 담겨져 있는 다크서클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말끔히 사라지고 해맑은 눈빛으로 교회와 민족이 한 마음 한 몸 되어 이 땅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온전히 드러낼 아름다운 그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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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규

다음카페 ‘어둠 속에 갇힌 불꽃’(http://cafe.daum.net/bulkot) 지기,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연구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