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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산책] 재물이 어찌 날 살찌우겠소? / 김태희

문근영 2010. 5. 24. 16:08

재물이 어찌 날 살찌우겠소?


   변씨가 깜짝 놀라 물었다.
   “그대 얼굴빛을 보니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소. 혹시 만 냥을 다 잃지 않았소?”
   허생이 웃으며 말했다.
   “재물로 얼굴이 좋아지는 것은 당신네들에게나 있는 일이요. 만 냥이 어찌 나를 도(道)에 살찌게 하겠소(萬金何肥於道哉)?”
   그리고 은 십만 냥을 변씨에게 주며 말했다.
   “나는 한때의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독서를 다 마치지 못하고 당신에게 만 냥을 빌린 게 부끄럽소.”
   변씨는 크게 놀라 일어나 절하고 사양하면서 십분의 일의 이자만 받겠다고 했다.
   허생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당신은 어찌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연암, <허생전>에서-


  허생이 일면식이 없는 부자 변씨에게서 돈 만 냥을 빌려 이른바 매점매석을 통해 큰돈을 벌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허생이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외국과 통상이 제한되고 유통 인프라가 낙후된 사정을 잘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유통망 개선과 통상장려라는 이용후생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무인도에 새로운 나라와 문명을 건설하는 허생의 담대한 시도로 이어진다. 윗글은 그 후 허생이 한양에 돌아와 변씨에게 빌린 돈을 열 배로 갚을 때의 장면이다.

  ‘인문학 위기’라는 말이 있다. 인문학도 물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 독서를 멈추고 돈벌이에 나선 허생의 부끄러움을 공유할 만하다. 그런데, 인문학이 위기라면 바로 전(全)사회가 위기라는 뜻이다. 그 위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바로 인문학의 책임 아닌가? 사람들이 빈곤과 질병으로부터 벗어나 물질적으로 여유를 갖는 것은 절실한 문제이다. 그러나 모두가 로또와 주식과 부동산으로 부자 되기에 혈안이 된다면, 정상이 아니지 않는가? 불과 몇 사람의 부자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많은 나머지 사람들이 안달인 꼴이다. 필요 이상의 욕망을 만들어내는 세상이다. 재물이 결코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재물로써 얼굴이 좋아지는 사람보다, 물질적 수요와 도덕적 가치를 적절하게 추구하고 평범하고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지 않겠나.

   지금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가 매주 토요일 오후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학생과 시민이 300석에 가까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또 ‘다산연구소의 실학강좌’가 매주 수요일 저녁에 열리고 있다. 주최측 예상을 훨씬 넘는 인원이 만해NGO교육센터 대교육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인문강좌는 1년 동안 지속되지만, 실학강좌는 다음 주에 제3강(안대회 교수)으로 일단락된다. ‘다산연구소의 실학강좌’는 보통사람들의 인문학 수요에 부응하여 장차 본격적인 강좌로 재개될 것이다. 실학은 재용(財用)과 민생(民生)의 넉넉함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허생이 큰돈을 번 요령만 배우지 말고, 허생의 꿈과 허생의 부끄러움도 함께 했으면.
 

   글쓴이/ 김태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