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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성 진
11일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8년의 미국산쇠고기 전면수입반대 촛불시위를 가리키며 참여한 사람들에게 반성을 요구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전날인 10일에는 그 당시 주무부서 책임자였던 정운천 전북지사후보가 촛불시위세력들에 대한 사과요구 성명을 냈다. 조선일보가 ‘촛불소녀’와의 인터뷰까지 왜곡해가며(오마이뉴스 2010.5.11) 기획기사를 올리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벌어진 일이다.
특히 정운천후보는 성명서 속에 “좌파단체들이 주도한 거짓 광우병 괴담극,” “거짓 선동으로 학생들까지 꼬여내 촛불시위를 주도,” “침묵을 지킨 전문가집단도 반성해야” 등등의 자극적인 표현까지 아끼지 않았다. 지방선거가 본격적인 막을 올리려는 예민한 시기에 이런 말이 나온 걸 보면 일종의 선거전략 같기도 하지만, 소위 장관출신이라는 정치인의 이러한 시대인식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5·18과 촛불, 시민들이 좌파세력?
온 나라를 촛불로 뒤덮으며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민들의 숭고한 정신이 이처럼 짓밟히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30년 전인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광주에서는 권력에 눈이 먼 신군부집단이 시민들을 상대로 처참한 만행을 저질렀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공수부대원들의 손에 죽어갔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목숨을 내던지며 항거했던 처절한 열흘간은 세계인을 감동시켰고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가장 중요하고도 가슴 아픈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적절히 표현할 단어조차 찾을 수 없었다던 5월의 참극을 경험한 시민들을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정작 형제자매와 이웃들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 것은 바로 무고한 시민들의 저항이 정부와 언론에 의해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으로, 심지어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들의 소행으로 매도되었다는 사실이다. 광주항쟁을 일으킨 것은 일부 불순세력도, 좌파집단도 아닌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었기에 이들의 억울함과 분노는 지금까지도 그들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있다.
불행히도 이처럼 시민들의 순수한 요구와 저항이 불순한 집단들의 불순한 저의로 매도당하는 일이 5·18 하나로 끝나지 않고 있다. 바로 2년전 미국산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며 전국 각지에서 수많이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던 촛불집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실 평범한 생활인들이 온라인을 통해 소통하고 토론하며 촛불을 드는 모습에 필자는 처음에 적지 않게 놀랐었다. 이러한 놀라움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느꼈던 것일 것이다. 심지어 시민들의 요구를 대변한다는 시민단체들 조차 촛불집회에 뒤늦게 따라나섰을 정도로 당시 주부와 학생, 일반시민들로 구성된 생활인들의 행동은 적극적이고 주도적이었다. 그리고 촛불집회의 주도세력이 시민 스스로였기에 집회의 역사적 의미는 더욱 컸다. 이런 그들을 좌파의 선동에 휘말렸다고 폄훼하는 것은 무고한 일반 시민들 모두를 좌파세력으로 모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국민과 민주적 의사절차를 무시한 게 핵심
돌이켜보면 당시 시민들의 요구는 복잡한 것도 아니었고 좌파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의 요구는 단지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를 사회적 합의 절차 없이 정부가 서둘러 미국에 양보한 것은 국민주권을 침해한 굴욕외교이기 때문에 이를 철회하라는 것뿐이었다. 당시 헌법 1조에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가 전국에 메아리쳤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광우병에 대한 위험 그 자체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가치가 위협받음으로 인해 국민의 건강권과 생존권이 공적 기능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게 될 위험을 염려한 것이었다.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 하나의 정책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 행정부를 포함한 공식적 정책결정체제만 작동하는 게 아니다. 사회적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되고 이슈화되어 정부의제로 채택되는 데에는 비공식적 정책환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여기에는 정당과 언론, 시민사회 등이 포함되는데, 이들의 활동은 모두 국민의 의사로부터 출발한다. 정책이 민주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이들 공식적, 비공식적 참여자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고 소통하면서 사회적으로 적절한 합의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민과의 소통이 단절된 정책, 더욱이 공식적인 정책결정체제 내에서 조차 합의와 소통이 부족한 정책은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된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했고 정운천 당시 장관도 촛불집회현장에 사과하러 나왔던 것은 바로 이러한 민주적 절차를 어겼기 때문이었다. 문제의 핵심이 이러한데 시간이 지나고 국민들의 화가 가라앉았다고 해서 거꾸로 국민들을 나무라려든다면 이는 언제든지 다시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겠다는 발언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지난 10일 1987년 6월항쟁 이후 20여년만에 명동성당에서는 사제, 신도 등 5000여명이 모여 대규모 시국미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윤종일신부는 “4대강사업이 국민적 토론과 합의, 적법한 절차가 없이 진행돼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도 역시 좌파에 선동되었거나 불순한 세력인지 묻고 싶다. 국민들에게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기 전에 과거의 잘못을 스스로 돌아보고 사과할 줄 아는 정치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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