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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5백년에 못된 소인배들도 많았지만 높은 학식과 넓은 국량으로 탁월한 정치적 역량까지 발휘했던 지도자들도 많았습니다. 세종 때에는 신하로서 최고의 지위에 올라 학식과 국량, 정치적 능력으로 세종의 치세를 도왔던 황희나 맹사성 같은 뛰어난 대신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선조 때에는 인물도 많아 서애 유성룡, 백사 이항복, 한음 이덕형, 오리 이원익 등 훌륭한 재상들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여 임진왜란을 극복하고, 망하기 직전의 나라를 그만큼이라도 중흥시켰습니다.
이렇게 학식·국량·지도력까지 겸비하여 한 시대를 조금이라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정조 때의 채제공입니다. 영조 52년의 긴긴 통치기간은 물론, 정조 시대의 전반까지만 해도 조선은 노론의 전성시대로 남인이나 다른 당파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영조 말엽에는 노론 중에서도 벽파들이 완전히 정권을 쥐락펴락하면서 국정을 농락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어려운 때에, 채제공은 외롭고 고독한 남인으로 고관대작을 역임하며 벽파들의 독주를 견제하고, 정도(正道)의 정치를 펴려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임금을 바르게 보필했던 정치지도자였습니다.
“번암 정승은 지위가 참판에 이르렀을 때에도 어버이를 섬기면서 천한 일을 몸소 하였다. 도승지로 있을 때에 조정에서 돌아오면 바로 조복(朝服)을 벗고 땔감을 안고 가서 아버님의 방에 손수 불을 때셨는데 그렇게 손수 하지 않으면 구들장의 차고 따뜻함이 알맞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示二子家誡)라고 다산은 채제공의 효성스러운 어버이 섬김을 이야기 했습니다. 다산은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10세의 연상이던 채제공과 같은 조정에서 벼슬하면서 채제공의 학식·국량·정치력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어버이를 극진하게 섬기는 효심을 밑바탕에 깔고 선조시대의 명정승들의 역량을 이어받았던 분이 채제공이라고 다산은 믿었습니다. 혈혈단신으로 거대한 노론 벽파의 권력을 견제할 줄 알았던 채제공의 정치력에 다산은 감탄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채제공이 세상을 뜨자 만사, 제문, 유사(遺事)라는 여러 글을 지어 그의 훌륭함을 후세에 전했고,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극찬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요즘 같은 정권 이동의 계절에 그만한 인물은 왜 없을까요. 낙마하는 장관 내정자를 보면서 채제공을 칭송하던 다산의 마음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다산도 그립지만 다산이 그렇게 칭송했던 채제공이 더욱 그립기만 합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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