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이야기
강명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그 친구를 만난 것은 한 달 전 출판사 사무실에서였다. 나와 전공은 다르지만 같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라 논문으로 저서로 종종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강연이 있어 서울 간 김에 책을 내기로 한 출판사에 들렀더니, 그 친구 역시 번역한 책을 교정하는 일로 와 있었던 것이다. 꼽아보니 15년만이었다. 출판사 사장은 난데없는 필자들의 해후를 보고 그냥 있으면 되냐고 오후 3시 경 피맛골로 우리 둘을 이끌었고, 결국은 10시까지 마시고 말았다.
친구와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이다. 고등학교 때 다른 학교로 진학했지만, 한 동네 이웃에 사는 터라 여전히 어울려 다녔다. 만남이 드물어진 것은 대학 졸업 후 그 친구가 유학을 떠나고부터였다. 십년 쯤 지나 나는 그가 귀국해서 서울에 있는 모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의 저서와 번역서를 구해 감탄하며 읽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좀처럼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내가 대학에 자리를 잡았던 1993년에 부산에 일을 보러 온 김에 왔다면서 내 연구실을 찾아와서 어릴 적 추억담과 서로의 공부 이야기로 한나절을 유쾌하게 떠들었던 적이 있다. 이게 마지막이었으니, 한 달 전의 해후는 실로 15년만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일제고사 1등’에 공부 잘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친구
그 친구 이름을 들면 늘 떠오르는 것은 ‘공부’란 명사다. 친구는 정말 공부를 잘 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는 일제고사의 1등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아무리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런 1등 말이다. 바로 그 친구가 그런 사람이었다. 동네 어른들이 ‘이지지꾸(무화과)나무집’ 아무개 말 잘 듣고 공부 잘 한다고, 본 좀 받으라고, 자기 집 아이들을 들볶을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친구는 모두의 기대대로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에 갔고, 유학까지 다녀왔다. 부모님과 동네 어른들 모두 그 친구가 크게 될 것이라 기대해 마지않았다.
지금 그 친구는 일주일에 열두 시간을 강의하는 대학강사다. 친구는 대학 교수 공채에 여러 번 떨어졌다. 그가 공채에 떨어진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손바닥처럼 좁은 학계라 한두 사람 건너면 이런저런 사정을 모두 알게 된다. 소문을 듣자 하니 공채 광고를 낸 대학 학과의 교수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실력이 ‘지나치게’ 출중하고 성품이 곧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몇 해 전에는 세간에 이름이 꽤나 나 있는 아무개 교수 역시 그가 공채에 응모하자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밍기적밍기적 하다가 평소 자신이 비판해 마지않았던 학과 안의 소인배들에게 동조해 내 친구를 배제하는 데 협조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럴 것이다. 그 친구는 그 교수보다 훨씬 우수한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친구의 나이가 마흔 중반을 넘자 이제 그 나이가 문제가 되었다. 기존 학과의 젊은 교수들은 실력은 있지만 자기들보다 나이 많은 내 친구를 뽑으려 하지 않았다. 친구는 한참동안 대학의 연구소에서 연구원 자리를 얻어 학술진흥재단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별 흥미도 없이 프로젝트에 얽매여 지내다가 나이 쉰이 넘자 그 자리도 눈치가 보여 스스로 그만두고 나왔다.
이번에 번역한 책 이야기가 나오자, 친구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마지막 잔을 털어 넣으며 말했다. “아무개야, 나 책이고 번역이고 인자 그만 둘란다.” 그리고는 상계동 자기 집으로 가서 옛날 이야기나 하며 더 마시잔다. 늦게 결혼한 친구에게는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이 있다. 역시 대학 강사인 그의 아내도 내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내가 어떻게 24평 좁은 그의 집에 가서 술을 더 마신단 말인가. 나 역시 부산으로 내려와야 하였다. 택시를 세워 운전수에게 지폐 몇 장을 쥐어 주고 내 옷깃을 잡는 친구를 밀어 넣었다.
쥐꼬리만 한 강사료로 고급노동력을 착취하는 그들만의 대학
부산행 기차에 오르며 신문을 샀다. 일제고사 부활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친구가 그날 밤 술집에서 일제고사 운운하는 티브이 뉴스를 보면서 내뱉던 말이 생각이 났다. “일제고사 좋아하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산의 「하일대주(夏日對酒)」의 한 구절이 또렷이 떠올랐다. “그들만이 재상이 되고, 그들만이 판서와 감사가 되고, 그들만이 승지가 되고 그들만이 헌관(憲官)이 되네.”
근자에 대학에 들리느니, 개혁이니 경쟁이란 소리다. 정말 불가해한 일이다. 혹시나 빼어난 연구자가 들어올까 ‘노심초사’하는 대학, 쥐꼬리만 한 강사료로 내 친구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대학이 어떻게 그렇게 거룩한 명사를 입에 올리는지 내 머리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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