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고 싶은 법정스님의 글

김수환 추기경·법정 스님 가상 대담

문근영 2010. 4. 22. 13:31

[매일신문     2010-03-27 10:45 ]

 

우리 국민은 1년여 사이에 위대한 종교 지도자 두분을 잃었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비록 걷는 길은 달랐지만 스스로 세운 원칙을 마지막까지 실천하고 언제나 이웃을 위해 살았던 두 분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스승이자 언제나 가까이 있는 성인이었다. 선종 1주기가 지났어도 여전한 김 추기경에 대한 추모 열기, 입적 후에도 법정 스님이 사람들에게 던지는 많은 깨달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기 위해 두분의 가상 대담을 싣는다. 평소 두분이 남겼던 어록과 저서, 함께 나눈 이야기와 주변 사람들의 전언을 토대로 구성했다.

김수환 추기경(이하 추기경):너무 급히 세상을 등지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법정 스님(이하 스님):네, 병세가 악화된데다 더 이상 가질 것도 남길 것도 없어 훌쩍 떴습니다.

추기경:지난해 2월 16일에 내가 떠나온 세상에 정확히 1년 하고도 23일을 더 계셨군요.

스님:지난 1년 동안 이상하게도 정치·종교계의 큰 인물들이 많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추기경: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스님:1997년 12월 제가 길상사 개원법회를 열 때 추기경님이 찾아오셨죠. 이듬해에는 제가 명동성당을 찾아 특별강론을 하기도 했고요.

추기경:아~, 13년 전이네요. 그리고 어느 해인가 부처님 오신 날, 함께 음악회에 있던 기억도 나네요. 그때는 우리 두 사람 모두 건강했지요.

스님:흐르는 세월을 어찌 막겠습니까. 때가 되면 떠나는 게 삶 아닌가요.

(이후 두 분의 대담은 기자가 정리하는 방식으로 바꾼다.)

◆"스님, 나 떠날 때 고마웠습니다”

추기경은 스님에게 눈물겹게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그리곤 법정 스님이 추기경을 떠나보낼 때 쓴 추모의 시를 다시 한번 읊었다.

“우리 안의 벽/우리 밖의 벽/그 벽을 그토록 허물고 싶어하던 당신/다시 태어난다면 추기경이 아닌 평신도가 되고 싶다던 당신/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이 땅엔 아직도/싸움과 폭력/미움이 가득 차 있지만/ 봄이 오는 이 대지에 속삭이는 당신의 귓속말/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사랑하고 또 사랑하라/그리고 용서하라.”

추기경은 법정 스님을 다시 만나면 꼭 직접 읽어주고 싶었다며 스님이 쓴 추모시를 읽었다. 추기경이 “이렇게 추모시에 화답시를 지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라고 하자 법정 스님은 “제 마음으로 쓴 글인데 이렇게 칭찬하시니 얼굴이 화끈거립니다”라고 대답했다.

◆차이는 하나로 통했다

기자가 찾아본 바에 따르면 두 분이 살아온 길은 극명하게 달랐다. ‘천주교와 불교, 불교와 천주교’, ‘영남(대구)과 호남(전남 해남), 호남과 영남’, ‘나눔과 무소유, 무소유와 나눔의 삶’, ‘말하기와 글쓰기, 글쓰기와 말하기의 달인’, ‘전 국민적 장례미사와 조촐했던 다비식’ 등.

살아온 길은 달랐지만 두 분은 서로에 대한 이질감이 전혀 없었다. 이런 결론을 내려봤다. ‘욕심이나 사심없이 산 두 분이 만나니 양극도 음극이 되고, 음극도 양극이 되는구나!’

갑자기 법정 스님이 불쑥 말을 건넸다. “추기경님! 한번 안아봐도 되겠습니까?” 추기경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님은 가벼운 포옹을 하며 속삭였다. “추기경님이 길상사 개원법회에 오셔서 불상과 탱화 속에 자리잡고 있을 때 참 묘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독감에도 불구하고 와 주셔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선종(善終)·입적(入寂) 이후에 대해

대담 도중 기자가 질문을 해 봤다. “추기경님! 선종 이후 전국에 깊은 애도와 추모 물결이 이어졌으며, 추모 인파는 명동성당에만 40만명, 전국적으로 100만명을 넘었습니다. 감사와 사랑을 실천했던 추기경님에 대한 추모 열기는 각막 기증과 나눔 운동으로도 번져 7만4천여명이었던 각막 기증 희망자가 지난해 말 17만8천명을 넘어섰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고맙습니다. 또 감사하구요. 사실 추기경이란 자리는 끝없이 베풀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한데, 죽음 이후까지 이렇듯 사랑해주시니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의 책이 인기입니다. 무소유는 웃돈까지 얹어 거래되고, 서점마다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요. 그만큼 세상이 팍팍하고 각박하다는 반증이잖아요. 많은 세속의 사람들이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다면 그 책이 그렇게 인기를 끌었을까요? 웃돈을 얹어가며 거래되는 것도 전 원치 않구요.” 두 분에게 한 질문은 결국 우문현답(愚問賢答)이 돼 버렸다.

◆대한민국에 대한 걱정은 여전

김 추기경은 13년 전 법정스님의 길상사 개원법회 축사에서 “요즘 정치·경제적으로 어지럽습니다. 난국에 마음은 더욱 심란해집니다. 이러다 우리나라 운명이 어떻게 되나 염려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하늘나라에서도 걱정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13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힘들고 고난의 연속입니다. 하늘나라로 왔지만 역시 하고픈 말은 생전에 들려줬던 말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십시오’."

법정 스님은 말많고 탈많은 세상에 ‘말빚’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무소유의 씨앗은 법정 스님의 유언처럼 세상에 말빚을 남기지 않겠다는 초연한 울림이었던 것. 역설적으로 보면 스님의 이 화두는 사회 지도층에 대해 말(言)로 빗는 경박함을 반성해야 한다는 촉구인 셈이다.

“차고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하지 않습니까? 긴 울림이 돼야 합니다. 남원설화에 이승에서 빚을 진 사람은 저승에서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갚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디 아름다운 말과 행동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보 김수환의 사랑과 빈털털이 법정의 무소유’를 되새기며 가상 대담을 끝냈다.

취재수첩과 펜을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송광사 선원장 현묵 스님의 말처럼 두 분은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 다른 데 어디 가 계시는 것"이란 느낌이었다. "추기경님이 선종하신 뒤 우리 사회에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표현이 늘었다"는 정진석 추기경의 말대로 사랑과 감사가 마음에 충만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김수환 추기경(1922년 5월 8일~2009년 2월 16일)은

세례명 스테파노, 대구 출생.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졸업, 독일 뮌스터대학원 사회학 전공. 1953~55년 대구 대주교의 비서신부·재정부장, 1964~66년 가톨릭시보 사장, 1968년 서울대교구장, 1969년 4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당시 전 세계 추기경 가운데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 2007년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입원, 퇴원을 반복하다 지난해 호흡 곤란과 혈압 저하로 인해 87세로 선종(善終). 저서로는 <사회정의> <평화를 위한 기도>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등.

▨법정 스님(1932년 10월 8일~2010년 3월 11일)은

법명 법정(法頂), 본명 박재철, 전남 해남 출생. 해인사 강원 대교과. 1954년 효봉스님의 제자로 출가, 1970년대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지음. 1997년 서울 성북동에 길상사 개원, 대한민국의 대표적 불교 승려이자 수필가.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회주,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수련원 원장. 지난 11일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향년 78세(법랍 54세)로 입적(入寂). 저서로 <무소유> <산에는 꽃이 피네> <아름다운 마무리> 등 다수.

 

*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157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