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茶山이야기] 손암(巽菴)형의 편지 한 통 / 박석무

문근영 2010. 4. 16. 11:46

손암(巽菴)형의 편지 한 통


1801년 음력 11월 22일 꼭두새벽, 그날은 다산의 중형 손암 정약전과 아우 정약용이 그 전날 밤 나주의 북쪽 5리 지점에 있는 ‘밤남정(栗亭店)’에 함께 도착하여 각자의 유배지인 흑산도와 강진으로 떠나며 마지막 헤어지던 순간이었습니다. 손암이 귀양살이 16년째인 1816년 59세로 흑산도에서 병사하자 형의 부음을 다산초당에서 들은 다산은 목 놓아 울면서, “밤남정에서의 이별이 끝내는 죽을 때까지 만나보지 못하는 이별이 되었도다!”(栗亭之別 遂成千古)라며 비탄으로 울부짖었습니다.

다산보다 4세 위인 손암, 다산의 말대로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지기(知己)이자 학문적 동지로서 논학(論學)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주던 우주 안에서의 유일한 이해자였습니다. 난해한 글이나 경전에 대하여 깊숙하게 토론하고, 다작의 저술가인 다산의 저작물이 나올 때마다 손암에게 보내 질정(質正)을 받았던 그 아름다운 형제는 이별 후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영영 사별하고 말았습니다. 다산에게 있어서의 천추의 한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다산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라는 다산의 일대기를 집필하던 무렵, 우연스럽게 손암이 다산에게 보낸 친필 편지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손암과 다산을 만난 것처럼 기쁨을 금하지 못할 때가 그 순간이었습니다. “1806년 3월 11일 사중(舍仲:둘째 형)이 쓴다”라는 날짜가 명기된 손암 친필의 편지는 200년 만에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책에 사진판으로 실어서 책을 읽은 사람은 모두 볼 수 있게 제공된 것입니다. 1806년이면 다산이 아직 다산초당으로 옮기기 전으로 읍내에서 신분이 낮은 제자들을 가르칠 무렵입니다.

그 무렵 뛰어난 제자에 황상(黃裳)이라는 학생이 있어 흑산도로 손암을 찾아 뵙고자 한다는 글을 다산이 보내자, 그 답장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황상의 나이는 몇이냐, 월출산 아래의 강진이라는 시골에서 그런 재주 있는 제자가 있다니 대단하구나. 그렇다 해도 육지와 섬은 다르니, 육지 사람이 섬으로 들어오는 일은 쉽지 않으니 삼가라. 얼굴을 보면 무엇하고 아니 보면 어떠냐. 글을 읽어보니 분명히 대단하다. 참으로 큰 학자가 되게 정성껏 가르치라”는 내용이 그 대체적인 뜻입니다.

그렇게 많은 편지를 형제가 주고받았건만, 손암의 편지 일부가 다산이 채록하여 다산문집 말미에 써놓은 것만 있을 뿐 친필로 전해지는 것이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는데, 이 한 통의 편지는 형과 아우가 주고받은 편지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으니 얼마나 귀중한 편지인가요. 반초로 휘둘러 쓴 손암의 편지를 보고 또 보아도 훌륭하게만 여겨집니다. 손암의 충고로 성심껏 가르침을 받은 황상은 뒷날 뛰어난 당대의 시인이자 문인으로 대성했으니 그 편지의 의미는 얼마나 큰가요.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