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나 단절 대신 ‘온고지신’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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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을 어찌 보내느냐는 말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촛불’ 이후 한쪽은 언론 장악 등으로 실책이나 비판을 덮으려 하고, 한쪽은 반성의 분위기를 벗어나 저항의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나면 나아질까? 다시 또 선거철이 와서, 오로지 “반미좌파 탓, 언론 탓”만 한 세력과 “잃어버린 5년”을 외치는 세력 사이에서 누구에게 표를 줄까 답답한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벌써 걱정이다. 오로지 상대방의 실수에 의해서 기회를 얻고, 그 기회란 것이 이제는 다른 편이 실수할 기회임을 의미한다면 정말 딱할 노릇이다. 우리 공동체가 안고 있는 과제는 5년 임기의 집권자에게만 맡겨져 있는 것은 아니다. 여와 야의 자리바꿈을 통해서 반성하고 분발하고 준비할 기회를 갖고, 다시 준비된 것을 펼 기회를 맞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이중의 과제가 놓여 있다. 민주주의 자체를 후퇴시키려는 유혹이나 훼손하려는 시도로부터 민주주의의 기본을 지키는 것과 민주화 이후 실질적 민주화에 미진했던 부분을 채우는 것이다. ‘촛불’은 설익고 편향된 정책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민심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그것으로 우리 공동체의 당면과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정권교체를 통해 국민이 새로워지기를 바란 것은 무엇보다 경제문제였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처해 있다. 그 핵심은 일자리 불안이다. 대기업은 호조를 띠고 수출이 증대해도 중소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 어렵게 일자리를 얻어도 비정규직이다. 아이들은 획일적인 무한경쟁 속에 내몰리고 학부모는 아이의 경쟁우위를 위해 사교육비까지 경쟁적으로 추가 지불하지만 청년실업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아직도 일할 에너지가 넘치고 한창 일할 나이인데 직장을 떠나야 한다. 경제정책은 담당책임자도 행태도 구태의연하다. 무분별한 규제완화나 구시대적 관치경제도 문제이지만, 우리는 근시안적 효율성 추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간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영세 자영업자를 양산하고 과당경쟁과 그에 따른 궁핍화를 낳는 것처럼, 한 경제주체의 효율성 추구가 역설적으로 국민경제 전체에서는 비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공공부문에서의 효율성은 공공성이나 국민경제적 효과를 감안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고용비중이 대기업보다 훨씬 크다는 점에서, 고용확대를 위해서는 대기업만을 위한 정책에서 벗어나 중소기업도 공생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또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경제의 안정 기조가 긴요하다. 각 경제주체의 경쟁과 노력이 조화를 이루고 공동의 이익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절한 구실을 해야 한다. 총체적으로 새로운 경제모델이 필요한 때다. 세계경제적 차원의 문제에 대응할 수 있고 우리 공동체에 적합한 경제모델의 수립에는 현실성과 창의성이 요구된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경험과 남의 경험을 철저히 새겨봄으로써 얻을 수 있다. 특히 최근 10년, 20년의 경험은 곱씹어봐야 할 참고자료이다. 정조대왕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뜻을 “옛것[古]을 익혀서 새것[新]을 안다”는 통상적 해석과 다르게 풀이했다. “이미 얻은 정보를 거듭 연구하면, 그 정보에서 저절로 새로이 깨닫는 맛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이중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근 10년, 20년 경험에 대한 정밀한 연구를 통해 공동체 성원 사이에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지적 역량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 기저에는 너나 없는 깊은 반성의 자세가 절실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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