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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포럼] 일본에 대한 몽상(夢想) / 김정남

문근영 2010. 4. 13. 07:31

일본에 대한 몽상(夢想)


                                                                             김 정 남(언론인)

YS가 대통령 당선자였을 때, 재야 민주인사들을 초청하여 오찬을 함께 한 일이 있었다. 이런저런 희망사항을 얘기하는 가운데 참석자 중 한 분이 당시 논의가 분분하던 일본종군위안부문제를 꺼냈다. 그 분의 말인즉 “종군위안부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정부에 보상금을 내라고 목청을 높이는 것이 화대를 연상시켜 괜히 찜찜하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은 마땅히 우리 스스로 보살펴야 하고, 이제 우리는 그럴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역사 앞에 진실을 밝히고 당사자들한테 사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YS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었다.

YS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며칠 뒤, 3.1절을 앞두고 나를 불러 그때의 얘기내용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정부로 하여금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우선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케 하고, 일본정부에 대해서는 종군위안부문제의 진실을 고백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한·일 양국 언론에 대서특필로 보도되었고, 일본의 한 신문은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은 도덕적으로 열세에 몰리고 있다고 썼다. 그 얼마 뒤, 귀국한 주일한국대사로부터 나는 자신의 외교관 생활 중 특히 일본에게 그렇게 떳떳해 본 적이 없었노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일본은 친구가 될 수 없는 나라인가

8월은 광복과 건국의 달이다. 굳이 독도영유권문제가 아니더라도 8월은 한번쯤 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해 보게 한다. 친일문학론을 쓴 임종국은 침략과 수탈은 그것을 당한 민족에게도 치욕이지만, 그것을 행한 민족에게도 역사적 수치가 된다고 하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본은 참으로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는 나라이다.

터키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터키국민들이 한국인들을 형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반갑게 대해 준다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부터 그랬다. 그것은 몽골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DNA가 비슷하고, 같은 우랄알타이 어계의 민족이라고 이처럼 지극한 친애(親愛)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DNA에서도 더 가깝고 지리적으로 수천 년을 이웃해 온 일본에서는 그런 친애의 감정이 발현되지 않는다. 일본은 문명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 엄연한 역사적 관계마저도 부정하고 싶어 한다.

일본의 학교 교과서는 지난 날 일본이 저지른 침략과 수탈의 만행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왜곡하여 기술하고 있다. 교과서문제와 신사참배, 그리고 독도영유권문제로 벌어지는 한·일간의 마찰은 이제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큰 원칙에 따라 항심(恒心)에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대처해야 하는데, 한국정부의 대응은 언제나 어설프기 짝이 없다. 냄비처럼 끓었다가 그것이 식어버리면 그만이다. 아마 이번에도 필경은 그렇게 끝날 것이다.

얼마 전에 타계한 박경리 선생은 일본을 치유할 수 없는 나라로 보고 그런 일본에 절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분이 남긴 유고는 “서로 이해하게 되면 좋지만”이라는 전제를 달고 “우리와 일본이 동족 어쩌고 하는 것은 역사의 영역일 뿐 터럭만큼의 동질성도 그들에게는 없다. … 날조된 역사교과서의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는 그것을 시정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두 나라가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만 있다면

과연 한국과 일본은 영원히 서로 신뢰하고 협력할 수 없는 사이인가. 일찍이 신숙주(申叔舟, 1417~1475)는 일본과 실화(失和)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 속에서 파트너십을 발휘하거나 공동의 협력을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2002년의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두 나라가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만 있다면 함께 해야 할 일, 보람 있는 일이 너무도 많다. 일본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에 에너지효율과 환경기술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 한국은 정보통신기술에서 첨단을 알리고 있으며, 한류에서 보듯이 새로운 문명, 홍익(弘益)문명을 탄생시키려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비(非)서양의 한국과 일본이 세계문명을 선도해 나갈 수가 있다. 세계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해 낼 수가 있다. 독도영유권문제 같은 건 협력하는 가운데서 녹아버리게 할 수도 있다.

무엇이 한·일 두 나라의 파트너십을 가로막고 있는가. 역사문제가 언제나 발목을 잡고 있다. 피해자는 용서하고 원한을 잊을 수가 있는데 가해자가 오히려 과거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일국주의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천황이 역사문제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하거나 아니면 일본에서 21세기 큰 지도자가 나올 수는 없는 것인가. 또는 문학작품이나 양국 국민간의 영적 교감으로 이 모든 역사의 찌꺼기를 거두게 할 수는 없는 것인가. 나는 이런 몽상을 하고 있다. 8월에 꾸는 나의 백일몽은 나 하나만의 꿈으로 끝나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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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