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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역시 정조대왕은 조선왕조의 임금으로는 뛰어난 제왕이었습니다. 조선 전기에 세종대왕, 후기에 정조대왕이 없었다면 500년의 역사전통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전기와 후기에 세종과 정조가 있었기에 국가의 제도가 정비되어 틀이 갖춰졌고, 문화의 꽃이 피어 문예부흥기였다는 말도 듣게 된 것이 아닐까요.
서양에서의 성경, 동양에서의 『논어』는 역시 고전중의 고전임은 부언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선 정조는 유학사상의 기본 고전인 사서오경(四書五經)에 밝은 경학자이자, 철학자였습니다. 경연(經筵)에서 학자신하들인 유신(儒臣)들과 경서에 대한 강론을 했던 기록이나, 규장각의 학사(學士)신하들과 토론했던 기록을 보면 정조의 학문 수준이 어느 정도였나를 금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조의 저술만 모아 편찬한 『홍재전서(弘齋全書)』라는 수준 높은 문집이 100권이 넘는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학자적 역량은 바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1791년은 다산이 30세이던 해입니다. 규장각에서 달마다 경학을 강론하는 월과(月課)를 치르던 때입니다. 정조가 다산에게 『논어』가 어떤 책이고 조목마다의 의미가 어떤 것인가를 묻고 답하는 토론이 진행됩니다. 다산의 답변도 해박하고 독창적이지만 정조의 질문 내용도 깊고 오묘한 대목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묻고 답한 내용을 「논어대책」이라는 제목으로 다산은 자신의 문집에 실어놓았습니다.
“제가 듣기에 물체 중에서 사람보다 더 영특한 것은 없고, 사람 중에서 성인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성인 중에서는 공자보다 더 성대한 분은 없으니, 공자의 말 한마디 글자 하나인들 인간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며 세상을 지탱해주는 벼릿줄이 되어줍니다. 그러나 공자의 기록이라는 『공자가어』나 『공총자』같은 책은 믿을 수 없는 곳이 많고 오직 『논어』한 책만이 후학들이 존숭하며 몸소 실천으로 옮겨야 할 내용입니다”라고 답변한 대목이 나옵니다.
다산은 너무도 『논어』를 좋아하고 믿었기에 자신이 직접 『논어』를 주해한 『논어고금주』40권을 저술하여 논어의 참뜻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2500년도 넘는 시대의 공자 말씀이니 어느 정도 가감은 있어야겠지만 인간행위의 모범이 되고 세상을 유지하는 벼릿줄인 『논어』를 읽지 않고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고전, 그중에서도 논어 읽는데 노력을 기울어야만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지 않을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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