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茶山)의 「탕론(湯論)」과 한국의 민주정치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탕왕(湯王)은 은(殷)나라 최초의 왕이다. 그는 하(夏)나라의 폭군 걸왕(桀王)을 내쫓고 천자(天子)가 되었다. 폭군을 내쫓은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복잡한 구석이 없지 않다. 탕왕은 걸왕의 신하다. 유가(儒家)에서는 왕과 신하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와 동일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비가 잘못이 있다 하여 자식이 아비를 내쫓고 아비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가? 유가는 그럴 수는 없다고 답한다. 탕왕은 전통적으로 유가에서 존경해 마지않는 성인이었다. 이 거룩한 성인께서 비록 폭군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섬기던 왕을 내쫓고 천자의 자리를 냉큼 차지했으니, 이것은 반역이 아닌가. 유가에게 이 문제는 작지 않은 고민거리였다.
추대하는 것도, 끌어내리는 것도 뭇사람이다
다산의 「탕론(湯論)」은 여기 답한다.
“천자란 어찌하여 생겨난 것일까? 하늘이 비를 내려주듯 천자를 세워준 것인가? 아니면 땅에서 샘물이 솟는 것처럼 천자가 나타났는가? 다섯 집 1린(隣)이 되어, 다섯 집에서 우두머리를 추대하여 인장(隣長)으로 삼고, 다섯 인(隣)이 1리(里)가 되어, 다섯 인(隣)에서 우두머리를 추대하여 이장(里長)으로 삼는다. 다섯 비(鄙)가 1현(縣)이 되어, 다섯 비(鄙)에서 우두머리를 추대하여 현장(縣長)으로 삼고, 여러 현장(縣長)들이 공동으로 추대한 사람이 제후(諸侯)가 되고, 여러 제후가 공동으로 추대한 사람이 천자(天子)가 된다. 천자란 뭇 사람들이 추대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다산에 의하면 천자는 오로지 뭇사람들의 추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천자가 마땅치 않으면 뭇사람들은 당연히 갈아치울 수가 있다. 이것은 모든 정치 단위가 같다. 인장(隣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5가(家)가 회의를 해서 갈아치우면 그만이다. 이장(里長)의 경우는 5린(隣)에서 그렇게 한다. 이런 방식으로 천자까지 갈아치울 수 있는 것이다. 천자는 물러나면 제후가 될 뿐이다. 이렇게 천자가 바뀌는 것은 뭇사람들의 견해를 따른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코 반역이 아닌 것이다.
다산은 이것을 다시 무용단에 비유한다. 단원들은 자신들 중 가장 재능이 빼어난 사람을 지휘자로 뽑아 춤을 지휘하게 한다. 그가 기대에 훌륭하게 부응하면 ‘우리들의 무사(舞師)’라고 부른다. 그렇지 않다면, 그를 끌어내리고 다른 사람을 세운다. 그는 내려와 춤추는 대열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단원들이 무사(舞師)를 끌어내리는 것은 반역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 뒷날 이것을 반역이라 하게 되었던가. 다산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한(漢)나라 이후 천자가 제후를 세우고, 제후가 현장(縣長)을 세우고, 현장이 이장(里長)을 세우고, 이장이 인장(隣長)을 세웠다. 그리고는 감히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에게 공손한 태도로 순종하지 않으면 ‘반역(反逆)’이란 이름을 붙였다. 왜 그를 반역이라 부를까? 옛날의 정치는 ‘아래로부터 위로’(下而上)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래로부터 위로’가 순리에 맞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는 ‘위에서 아래로(上而下)’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래로부터 위로’가 반역이 된 것이다.”
간단한 말이다. ‘아래로부터 위로’의 정치가 ‘위로부터 아래로’의 정치가 되면서부터 아래 사람이 윗사람에게 뭔가 불만을 항의를 표하는 것이 모조리 불공한 일이 되고, 반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만 ‘하이상’인 한국의 정치
왕정(王政)의 하향적(下向的), 일방적 권력 집행을 비판한 다산의 생각은 조선시대 유가(儒家)로서는 정말 발설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왜냐하면 다산의 논리를 연장하면, 정치적 단위마다 존재하는 정치권력을 비판해 갈아치울 수 있을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백성이 왕을 갈아치우고, 백성이 정치권력을 쥐어야 한다는 쪽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산의 주장은 엄청나게 혁명적인 것이다.
현대의 정치는 민주정치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고 한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뽑는다. 말하자면 하이상(下而上)이다. 하지만 선거 때만 ‘하이상’일 뿐이고, 선거 이후는 오로지 ‘상이하(上而下)’다. 왜 한국의 정치는 짧은 ‘하이상’과 기나긴 ‘상이하’를 반복하는가? 다산의 「탕론」을 꼼꼼히 읽고 궁리해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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