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茶山이야기] 규장각(奎章閣)

문근영 2010. 4. 11. 09:47

규장각(奎章閣)


조선왕조 500년, 전기의 세종대왕과 후기의 정조대왕을 빼놓을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세종이 집현전(集賢殿)을 통해 나라 안의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놓고 조선의 문물제도를 제대로 갖추었다면, 정조는 규장각을 새로 만들어 수많은 초계문신들을 불러모으고 탁월한 검서관들이 능력을 발휘하게 하여 문예부흥의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끄는 일에 인재 등용과 발탁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가장 명확하게 증명해주는 기관이 다름 아닌 집현전과 규장각이었습니다.

최근에 『문화정치의 산실 규장각』이라는 이름의 책을 받았습니다. 평생동안 한국사연구에 몰두하였고 이제는 대학에서 정년을 한 노교수이면서도 끊임없이 학문적 업적을 내고 있는 한영우 명예교수의 저술입니다. 보내준 책을 넘겨보면서 새삼스럽게 정조의 높은 학문과 뛰어난 정치력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규장각의 직제로 보면 가장 높은 지위의 책임자는 ‘제학(提學)’이었습니다. 노론에 김종수(金鍾秀), 남인에 채제공(蔡濟恭)을 투톱으로 제학에 임명하여 당론을 절충하면서 정책을 입안하는 탕평책을 훌륭하게 실천해갔습니다.

영조·정조시대 이전에는 고위직이나 역할이 큰 벼슬에 임명될 수 없었던 서출(庶出)의 박제가·유득공·이덕무·서이수 등 뛰어난 인재들을 검서관으로 발탁하여 새로운 개혁정치의 정책을 입안토록 하였습니다. 신분철폐를 통한 평등사상을 실현하려던 정조의 높은 뜻은 역사적으로 큰 평가를 받아야 할 대목입니다. 더구나 초계문신으로 발탁된 정약용 같은 소장학자들에게 중국에서 들어온 서양의 과학사상이나 과학기술에 대한 많은 도서들을 거리낌 없이 읽도록 기회를 제공한 일은 조선의 문예부흥과 역사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기도설』이라는 방대한 책을 열람한 다산 정약용은 바로 거기에서 얻은 지식을 통해 수원의 화성 축조에 기중기나 거중기를 제작하였습니다. 경비를 절감하고 인민의 고통을 덜게 해주었던 일이 바로 궁중비서(宮中秘書) 등을 마음 놓고 읽을 수 있게 해준 때문이었습니다. 세종이 집현전에서 여러 학사들에게 많은 자료를 제공해주면서 한글을 창제할 수 있게 했던 것과 흡사한 일이었습니다.

세상은 돌고 돌면서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바른 통치에는 반드시 바르고 뛰어난 인재들이 등용되어야 합니다. 채제공·정약용 같은 인재들의 등용이 없었다면 정조의 치세가 이룩되었을까요. 오늘에도 규장각같은 인재발탁기관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