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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도덕국가로의 길 -베이징올림픽이 가르쳐준 교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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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나는 간헐적인 중국여행을 통하여, 중국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갈 때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어제의 그 베이징이나 상하이가 아니었다. 상전벽해란 중국의 변모를 두고 하는 말로 들렸다. 김정일이 했다는 천지개벽이라는 말도 실감으로 다가왔다. 10억이 넘는 방대한 인구를 이끌고 그들 중국의 지도자들은 소강(小康), 화해(和諧), 굴기(掘起)로 안전하게 거대 중국을 이끌어왔다. 반면에 한국은 중국이 소강, 화해, 굴기로 한발한발 나아가는 동안,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나라”,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나라”, 심하게는 “방향 잃은 배”라는 조롱과 수모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아시아·태평양시대에 모처럼 그 중심에 서는가 했더니 어느새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동북공정 등을 통하여, 실제로 우리는 또다시 변방으로 밀려나는 비애를 맛보고 있다. 2008 베이징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 올림픽에서 세계 7위의 한국성적 또한 빛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베이징올림픽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한국선수단이 중국의 관중으로부터 냉대를 받은 데다, 깊어지고 있는 중국인들의 반한감정, 혐한론이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쓰촨성 대지진 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인터넷을 통한 악담이 119구조대를 비롯한 한국인의 구조활동을 백지화시켰고, 성화봉송 때 한국과 중국간에 발생한 불상사와 SBS의 올림픽 개막식 리허설의 사전보도 등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모두가 가볍고 잠망스런 행동이었다. 그러한 행동이 대국의식에 젖어있는, 거기다 이번 올림픽을 통하여 굴기하는 중국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중국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중국여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일부 한국인의 추악하고도 방자한 처신은 동족인 우리에게도 눈꼴이 실 정도이다. 중국과의 수교 20년 동안, 교류는 양적으로 엄청나게 팽창했지만, 정신적인 교감은 거의 없었다. 중국출장이나 관광에서 보여준 한국인의 어설픈 과시욕과 돌출행동 등 그 모든 것의 집적이 반한감정이나 혐한론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80만 명의 한국인과 4만3천 개의 한국기업들이 이러한 경향을 우려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들은 ‘겸따마다’(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기)운동이다 뭐다해서 자못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캠페인이나 대증요법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내가 나를 업신여긴 연후에 남이 나를 업신여긴다는 말이 한국인에게 영락없이 들어맞고 있다.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랴. 먼저 ‘내 탓이오’를 고백해야 한다. 나는 베이징올림픽을 보면서, 우리 한국, 한국인의 살 길은 한국인의 존재 자체만으로, 그 높은 도덕과 문화, 그 존엄함으로 하여 감히 아무도 우리를 트집잡거나 업신여길 수 없도록 우리 자신을 세우는 데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힘이 아닌 도덕과 문화로 우리를 지키고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선인(先人)들이 동방예의지국을 내세웠던 것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백범(白凡)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도 진정 이것이었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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