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민의 오두막에서
어느 깊숙한 두메산골에 화전민이 살다가 비운 오두막이 있다는 말을,
한 친지로부터 전해듣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길을 떠났다.
그야말로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전기도 통신 수단도 없는
태곳적 그대로인 곳이었다.
처음 오두막을 찾아갈 때는,
사람이 거처할 만한 집인지, 둘레가 어떤지 내 눈으로 살펴보고
한 이틀 쉬었다가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룻밤 쉬어 보니 그대로 눌러 있고 싶어졌다.
그 오두막에서 나는꼬박 열하루를 지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은,
무엇보다도 사람 그림자를 전혀 볼 수 없는 점과
그저 그렇고 그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미치지 않는 점이었다.
나는 근래에 와서 사람을 그리워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에게 시달린 처지라 사람꼴 안 보니 얼마나 좋았는지 몰랐다.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그리운 사람이다.
한시인의 표현처럼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그런 사람이다.
곁에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그리움의 물결이 출렁이는 그런 사람과는 때때로 만나야 한다.
그리워하면서도 만날 수 없으면 삶에 그늘이 진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지극히 사무적인 마주침이거나
일상적인 스치고 지나감이다.
마주침과 지나감에는 영혼에 메아리가 없다.
영혼에 메아리가 없으면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다.
그 오두막에서는 밤낮으로 시냇물 소리가 들려
영혼에 묻은 먼지까지도 말끔히 씻어주는 것 같았다.
살만큼 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때,
할 수 있다면 그런 오두막에서 이 다음 생으로 옮아가고 싶다.
사람이 많이 꼬이는 절간에서는 마음 놓고 눈을 감을 수도 없다.
죽은 후의 치다꺼리는 또 얼마나 번거롭고 폐스러운가.
출처 :생활불교 원문보기▶ 글쓴이 : 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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