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에게는 바느질도 맡기지 말라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1769년 4월 16일 영조는 석방할 가벼운 죄수의 명단을 보던 중 김기장이란 선비가 기생을 개인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기녀는 원래 관비(官婢)다. 즉 국가에 소속된 노비인 것이다. 지방의 기생은 궁정에 큰 잔치가 있으면 서울로 올라와 노래와 춤으로 잔치의 흥을 돕고, 잔치가 끝나면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한데 젊고 어여쁜 여자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힘깨나 쓰는 양반들이 그냥 둘 리 만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 것으로 차지한다. 김기장 역시 어떤 수단을 통해 예쁜 기생 하나를 차지했던 것이다.
기생 데리고 사는 벼슬아치는 자수하라!
영조는 성격이 급하고 거친 사람이다. 김기장에게 먼저 곤장을 안기고, 사사로이 기생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을 찾아내라고 명령했다. 서울 도성이 발칵 뒤집힌다. 한밤중인 3경에 영조는 건명문에 나아가자 기생을 데리고 살던 조정의 벼슬아치, 유생이 모두 집합했다. 벼슬을 떼어 내쫓고 곤장을 쳤다. 조정의 고관은 물론 중인과 장교, 각 관청의 서리, 하례(下隷)까지 처벌을 받았다. 해당자를 많이 잡아내지 못한 오부(五部)의 관원들도 모두 감옥에 갇혔다. 끔찍한 하룻밤이었다.
보다 못해 부수찬 이득복 등 6명의 홍문관 신하들이 상소를 올렸다. 처분이 너무 과하니,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반성하라는 것이 요지다. 영조는 자신이 정당한 일을 하고 있는데 웬말이냐며, “경들도 데리고 사는 기생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득복 등은 모두 있다고 답했다. 이 말이 다시 영조의 격한 감정에 불을 질렀다. 영조는 또 다시 기생을 데리고 살고 있거나 산 적이 있는 벼슬아치들은 모두 자수하라고 명령을 내린 뒤, 이득복 등 홍문관의 여섯 신하들의 집안 노비를 불러 곤장을 치고, 이득복은 귀양을 보낸다. 홍문관 벼슬은 유신(儒臣)이라 하여 최고로 명예로운 벼슬로 친다. 그런데 기생 때문에 귀양을 가다니, 이런 수치가 없다.
기생을 데리고 산 사람들의 완벽한 명단이 올라왔고, 영조는 그들을 모두 귀양을 보낸다. 너무 지나치다며 간하는 사람 역시 귀양지로 떠났다. 자수하지 않고 있다가 발각된 자는 칼을 씌워 감옥에 가두고 군법에 의해 조리돌림을 한 뒤 바닷가와 절도에 충군(充軍)시켰다. 대사간 이의로는 늦게 자수했다가 제주도로 귀양을 갔고, 영의정 홍봉한은 사태에 대해 눈치나 본다며 파직되었다.
영조가 이렇게 난리를 쳤다 해서, 이후 조선의 양반들이 기생을 첩으로 데리고 사는 풍조에 변화가 있었을까? 아무 변화도 없었다. 기녀제도가 유지되는 한 그것은 영원히 바랄 수 없는 것이었다. 그해 8월과 11월 영조는 두 차례에 걸쳐 귀양 간 사람들을 풀어주라고 명한다. 양반이 기생을 데리고 사는 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사건은 한 차례 영조의 원맨쇼였을 뿐이다.
조선조의 양반-남성은 여성의 성을 착취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동원해 기녀제도를 존속시켰다. 고려 때부터 있던 기녀제도를 조선조에 들어와 일부 사대부들이 폐지하려 했지만 조선조 말까지 폐지되지 않고 유지되었던 것은, 결혼제도를 넘어서서 성적 욕망을 채울 또 다른 제도적 장치로서 기녀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성리학이란 거룩한 철학과 『소학』이라는 깐깐한 도덕의 시행세칙을 외면서 엄숙하고 단정한 모습을 보였지만, 안으로는 기녀를 통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양반들의 실제 모습이었다.
유구한 전통(?)에 대해 반성이 없다면
다산은 『목심민서』에서 지방관은 자신의 안팎 의복조차 관비(官婢)·관기(官妓)에게 바느질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바느질 하는 비용을 아끼려고 관비나 관기에게 맡기면, 결국 그들이 몸을 판 돈을 바느질집에 주고 바느질을 해오므로 원망이 없을 수 없고, 또 그런 돈으로 지은 옷으로는 부모가 낳아준 몸을 가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곱씹어 보면, 다산의 말은 지금도 설득력이 있다.
최근 어느 여배우의 죽음에서 엿보이는 한국 사회의 높으시고 거룩한 분들의 행각, 청와대 행정관들의 성매매 의혹 등은 기녀제도를 유구한 전통으로 두고 있는, 하지만 한 번도 그 전통에서 대해 근본적으로 반성해 본 적이 없는, 한국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이런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우울한 일이다.
사족 하나. 약간 다른 차원의 문제지만, 국가 권력이 모텔(호텔이 결코 아니다)에서 개인의 성생활까지 감시하고 검열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