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예찬 / 김기택
말은 그의 삶에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주었던가
이제 그의 몸은 악기가 되었고 그의 말은 음악이 되었다
그가 말을 연주할 때
혀와 이와 입술은 얼마나 정교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던지
피리 구멍 같은 코는 얼마나 정확하게 바람을 조절하던지
배는 큰북처럼 얼마나 정확하게 바람을 조절하던지
그 좁고 어두운 입 안에서도
발음과 억양은 지느러미처럼 날렵하고 경쾌하게 헤엄쳤다
혀가 얼마나 힘차게 꼬리를 차며 물을 튀기던지
연달아 내 얼굴에 침이 튀곤 하였다
숨 쉴 겨를도 없이 말들이 쏟아져나왔으나
어느 발음도 이에 깨물리거나 혀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다
말이 말처럼 달리면 사방에서 숨이 막히도록
깔깔거리는 소리들이 바람과 흙먼지 되어 일어났고
그 웃음소리가 채찍이 되어 말의 가속도는 늘어났다
갈수록 말은 제 흥에 겨워 점점 더 힘이 붙었고
말의 장단에 박자를 맞추느라 몸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즉흥환상곡 악보인 그의 표정에서는
매 순간 연주될 음악이 현재 진행형으로 그려졌고
음악에 심취한 두 팔은 지휘봉처럼 격렬하게 떨었으며
두 발은 피아노 페달을 밟듯 연신 바닥을 두드렸다
오줌이 마려워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그는
잠깐 말을 그치고 얼른 화장실에 다녀오고 싶은 듯했으나
제 속도에 취한 말들은 오로지 앞으로만 달려갔다
어찌하겠는가 이렇게 믾은 말이 들어 있는
커다란 소리통을 몸으로 갖고 있으니
이미 말들은 소리통에서 뛰쳐나오기 시작했으니
-시집 <소> / 2005년 문학과 지성사-
김기택 시인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 영문과 졸업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꼽추」당선
시집
1992년『태아의 잠』
1994년『바늘구멍 속의 폭풍』
1999년『사무원』
2005년『소』
1995년 김수영문학상,
2001년 현대문학상
2004년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2006년 지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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