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영혼

간디의 말씀

문근영 2010. 1. 10. 08:32

요즘 다시금 "간디 자서전"를 꺼내어 읽고 있다.
20대에 함석헌 역으로 만나 간디 자서전 (삼성출판 1977년판)
30대 다시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단식으로 그 기쁨을 기념한 일이 있다.
이제 50이 넘어 다시 "간디 자서전"을 읽는다.
젊은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요, 만나야 할 스승이다.
새벽마다 읽고 워딩을 하고 있다.
우선 밑줄친 글들을 워딩하고 내 느낌을 적어 나가고 있다.  - 新川  


간디 자서전 - 나의 진리실험 이야기


♧ 나의 이름은 문명된 사회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내게는 그 일들이 큰 가치가 없다.
그 일들 때문에 내게 주어진 마하트마의 칭호는 더군다나 가치가 없다.
그 칭호는 내게 큰 고통을 준 일이 많다.
그것이 내 마음을 흐믓하게 해 준 일은 한번도 없다. (41쪽)

♪ 그렇다.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칭호에 좌우되지 않는다.
  소인들만 오직 이름과 감투를 얻고자 안달이다.


♧ 내가 성취하려고 원하는 것,
지금껏 30년동안 성취하려고 싸우고 애써 온 것은
"자아의 실현"이다.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봄이다.
모크샤(삶과 죽음에서 해방됨)에 도달함이다. (41쪽)


♪  그렇다.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할 것인가?
   자아의 실현, 자유의 인간(몸과 정신의)
   삶, 죽음에서 해방된 거칠 것없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 내가 절대적 진리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한 내가 이해하고 있는 이 상대적 진리를 굳게 잡는 수 밖에 없다. 이 상대적 진리가 그 때까지는 나의 등대요, 나의 작은 방패요, 나의 큰 방패다. 이 길이 비록 험하고, 좁고, 면도날같이 날카로울지라도 그것이 내게는 가장 가깝고 쉬운 길이다. (42쪽)

♪ 그렇다
  산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사람은 평탄한 길로 오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고생 고생하며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길이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둘 다 값어치 있는 길이다.
  오를 생각도 아니하고 자포자기하는 사람이 많다.
  진리를 열망하지 않음은 값어치 없는 인생이다.
  기독교를 통해서 건, 힌두교를 통해서 건,
  장자를 통해서 건, 부타를 통해서 건
  진리에 다다르는 길은 각자 다르다. 다를 수 밖에 없다.
  타인이 내가 걷고 있는 길을 따르지 않는다 해서
  비웃거나 비난하는 일은 아직 진리의 길이 무엇인지 모른다 할 밖에 없다.    

♧ 진리를 찾아 사는 이는 티끌보다도 겸손해져야 한다.
세상은 티끌을 그 발 밑에 짓밟지만 진리를 찾는 사람은 티끌에 조차도 짓밟힐 수 있을 만큼 겸손해져야 한다. (43쪽)

♪ 그렇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세상이 보기에 바보로 보여야 한다.
  겸손, 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다만, 나를 드러내지 않는 일이 첫걸음이거늘...

♧ 감각의 대상을 골똘이 생각하면
집착이 생긴다.
집착에서 욕망이 일어나고
욕망은 불타올라 맹렬한 정욕이 되고
정욕은 무분별을 낳는다.
그러면 기억이 온통 틀려져
고상한 목적이 사라지고
마음은 말라버려
목적과 마음과 사람이 모두 망한다.
(98쪽 기타 2장)

♪ 그렇다.
  간디는 경전 기타를 가까이 두고 읽었다.
  그의 오랜 시간 마음을 닦는 지침이 되었다.
  우리의 욕망은 그렇게 수시로 불뚝불뚝 솟는다.
  한 번 깨우침으로 모든 게 끝난다면 오죽 좋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수시로 변화한다.
  욕망도 한 번 잠재운다고 끝이 아니다.
  마음의 지침이 되는 깨우침의 글을 가까이 두고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을 게을리 한다면
  그야말로 사람도 목적도 마음도 모두 망한다.  

♧ 나의 어려움은 깊은 데 있었다.
예수만이 하느님의 오직 하나인 화신이요, 그를 믿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나님이 만일 아들을 둘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가 그의 아들일 것이요,, 예수가 만일 하느님과 같거나 혹 하느님 자신이라면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과 같이 생겼을 것이고 하느님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성은 예수가 그의 죽음과 피로 세상 죄를 대속했다는 것을 글자 그대로는 믿을 수 없었다. 비유한다면 거기에 어떤 진리가 있을 것이다.
또 기독교에 의하면 오직 사람만이 영혼을 가지고 있을 뿐이요, 다른 생명에는 없어서 그것들은 죽으면 완전히 없어져 버리고 만다고 한다. 나는 그와 반대의 믿음을 갖는다. 나는 예수를 하나의 순교자로, 희생의 화신으로, 거룩한 스승으로는 받아들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일찍 태어났던 인간 중 가장 완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죽음은 세상에 대한 위대한 모범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 어떤 신비로운 기적적인 공로가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153쪽)

♪ 그렇다.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간디는 기독교로 전향을 수없이 권유 받았다.
  그들의 집회에 참석하여 함께 공부하였다.
  깊은 고뇌가 있었다.
  하지만 유일한 진리의 길이라는 예수 추종자들을 따라 갈 수 없었다.
  「하나님이 만일 아들을 둘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가 그의 아들일 것이요. 예수가 만일 하느님과 같거나 혹 하느님 자신이라면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과 같이 생겼을 것이고 하느님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절대 공감한다.
    
♧ 나는 안락한 살림을 시작해 보았지만 그 실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성을 들여 집을 꾸며 놓았지만 마음은 거기 있지 못했다. (214쪽)

♪ 그렇다.
  안으로 평화가 없다면 외적인 풍요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玩物喪志라는 말이 있다.
  물건에 정신을 빼앗기면 뜻을 잃는다는 말이다.
  안락한 살림보다는 욕심없는 마음을 지님이 우선이다.

♧ 절제하는 심령 앞에서는 감각의 대상은 사라지나 그 맛은 남아 있다.
지극히 높으신 이를 깨달을 때 그 맛마저 사라진다. (214쪽)

♪ 그렇다.
  절제하는 마음 앞에서는 감각의 대상이 사라짐을 알겠다.
  하지만 지극히 높으신 이를 깨달음은 나는 아직 멀었다.

♧ 나는 믿는다.
일이 아무리 많더라도 사람은 식사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운동에 대해서도 반드시 시간을 내서 해야 한다. 내 좁은 소견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일하는 역량을 더해 주지 절대로 감소시켜 주지 않는다. (232쪽)

♪ 정말 그렇다.
  밥 먹는 시간은 아침 점심 저녁 합하면 한 시간정도 된다.          
  하루 한 시간  시간을 내서 운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몸을 알고 몸과 대화를 나눌 줄 알아야 비로소 仙人의 경지에 들었다 할 것이다.


♧ 아내와 아이들과 갈라지는 것, 자리 잡혔던 사업을 중지하는 것, 확실하게 불확실로 뛰어드는 것-이 모든 것은 한동안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불확실한 생활에 익숙해 있었다.
이세상에서 확실한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참이신 하느님을 제외하고는 세상 모든 것이 불확실한 것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본체가 계시어서 그 불확실 일시적인 것 뒤에 확실로 숨어 계신다. 사람이 이 확실자의 모습을 잠간이라도 보고 거기에 제 수레를 붙들어 맬 수 있다면 복된 자다. 진리탐구야말로 인생의 至上善이다. (247쪽)

♪ 그렇다.
  나는 이 글이 너무 너무 좋다.
  책상에 붙여 놓고 자주자주 눈길을 주었던 글이다.
  이세상에서 확실한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음을 안다.
  때때로 불확실로 뛰어드는 모험,
  두려움을 이겨냄이 참 값어치있는 인생을 살도록 해줌을 믿는다.


♧ 어떻게 하면 모든 소유를 다 내버릴 수 있을까?
내 몸부터가 훌륭한 소유가 아닐까?
아내나 자식들은 소유가 아닐까?
내가 가지고 있는 책장을 다 부숴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내 지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이를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대답은 즉시로 왔다.
내가 가진 것을 다 버리지 않는 한 그이를 따를 수 없다. (256쪽)

♪ 그렇다.
  종내 모두 떠날 것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아 거리에 나부끼는 바람에 이는 먼지로 돌아 갈 것이다.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욕심 낸다 말인가.
  세상일이란 게 모두 보잘 것 없는 일 투성이다.


♧ 서양(영국) 사람은 너무 여러 번 너무 많이 먹는다.
나는 내가 이때까지 필요 이상으로 먹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260쪽)

♪ 그렇다.
  서양 사람들 너무 너무 소비한다.
우리도 그 사람들을 배워 소비에 환장을 한다.
필요 이상을 먹지 않음이 정말 중요하다.

♧ 나는 사람이 약을 먹을 필요는 없다는 믿는다.
천에 구백구십구는 음식조절, 흙, 물치료, 또는 비슷한 가정요법으로 나을 수 있다.
조금만 아프면 서양의사를 찾고, 한의사에게 달려가고
식물성 동물성의 가지가지 약을 삼키는 사람은
스스로 제 목숨을 단축시킬 뿐 아니라, 몸의 주인 노릇을 못하고 종노릇을 하는 동안에 자제하는 힘을 잃어서 종내 사람 노릇을 못하게 되고 만다. (261쪽)

♪ 그렇다.


♧ 양으로나 질로나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
생각과 말을 절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로 필요하다. (263쪽)

♪ 그렇다.
  말을 절제 하는 것은 잘 아는 일이다.
  하지만 생각 역시 절제 할 줄 알아야 함을 깨닫는다.
  쓸모없는 상상이나 걱정들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먼 하늘 구름을 바라보며 즐거운 명상에 잠김이 좋다.


♧ 궁극의 목적이 진리를 탐구하는데 있기만 하면, 아무리 그 사람의 계획이 실패하였다 해도 결말은 절대 해로운 것이 아니고 도리어 기대헸던 것보다 더 좋게 된다. (289쪽)

♪ 그렇다.
  진리 탐구를 삶의 한 가운데 놓아 보자.


♧ 단식과 음식 제한이 이제 내 생활에 있어서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사람의 정욕은 일반적으로 미각의 쾌락을 따르려는 생각과 함께 붙어 다닌다. (302쪽)  

♧ 사람은 맛을 즐기기 위해서 먹어서는 안되고 오직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 각 감각기관이 몸을 섬기고, 몸을 통해 혼을 섬길 때 비로소 제 바로 살아 갈 수 있다. (309쪽)

♪ 그렇다.
  게걸스럽게 먹을수록 욕망은 불타오른다.
  간소하게 먹을 줄 아는 것이 이제 중요한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