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영혼

간디·비노바 바베와 '이웃공동체'인 함석헌의 씨알아쉬람 인도에 세워

문근영 2010. 1. 4. 01:52


△ 2004년 완공될 씨알공동체 조감도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인도의 독립에 앞서 한 마을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이후 죽을 때까지 감옥과 연금상태에 있던 때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아쉬람(인도식 공동체)에서 보냈다. 한 사람과 한 마을이 각자 깨어나지 않으면 결코 나라도 세상도 바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간디를 만난 뒤 비폭력저항운동과 토지헌납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비노바 바베(1895~1982)도 “간디 선생과 함께 한 공동체 생활이 없었더라면, 생활의 질서를 세우는 일에 이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함석헌(1901~1989)도 생전에 앞으로 인류가 살기 위해선 공동체 운동 밖에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천안 씨알농장과 강원도 암반덕공동체를 몸소 실험하기도 했다.

이처럼 공동체에 인류의 희망을 걸었던 간디와 함석헌이 인도의 중부 마하스트라주 낙푸르에서 다시 만난다.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인도 낙푸르에 함석헌 선생의 뜻을 이은 씨알아쉬람을 건립하기로 한 것이다. 낙푸르에는 간디가 마지막 생애를 보낸 간디아쉬람과 비노바 바베의 뜻을 이은 여성공동체인 비노바바베공동체가 있는 곳이다.

크리스챤 아카데미 김경재 원장과 김진 상임연구원 등은 지난 2월 인도 현지를 방문해 남인도교회로부터 땅 8천평을 기증받고 최근 아쉬람 건립을 위한 구획정리 사업에 착수했다. 이 아쉬람 부지는 간디아쉬람과 비노바바베공동체로 부터 각각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세계 영성가들의 주목을 받은 비폭력 평화 사상의 보금자리에 한데 모인 셈이다.

세 사람의 인연의 고리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함석헌은 간디가 머물렀던 영국 퀘이커공동체인 우드부록에서 평화사상의 기초를 다졌고, 인도에서 비노바 바베를 직접 만나 교유하고, 말년의 강연에선 비노바 바베를 자주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낙푸르 지역은 천민으로 태어나 인도 독립후 초대 법무장관으로 오른 암베드카르(1893~1956)가 태어난 곳이다. 장관에 오른 뒤 힌두교를 버리고 평등정신을 강조한 불교로 개종한 그를 기념하는 성전이 있는 곳이자, 힌두교 근본주의자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국내 종교간 대화를 이끌어온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씨알아쉬람을 통해 종교 대화의 모델을 창출하려는 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 왼쪽부터 함석헌, 간디, 비노바 바베


씨알아쉬람은 명상센터와 교육센타, 수도공동체 등 세 영역을 중심으로 손님들이 묶는 게스트하우스와 농사를 짓는 경작지 등으로 구성된다. 명상센터는 호수의 물 가운데 짓고, 수도원은 한국 전통양식인 성균관의 회랑처럼 꾸민다.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내년 안으로 공동 기숙사 건물을 지어 1차 입주 후 단계적으로 확충해 2004년 완공할 계획이다. 터닦기공사는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세계 평화를 위한 교류' 프로그램에 참석해 지난 2월부터 4개월 예정으로 머물고 있는 자원봉사자 6명이 맡고 있다.

한국쪽 실무책임을 맡고 있는 김진 연구원은 “가난하고 소외됐지만 인간의 본래 가치를 잃지않은 사람들을 함석헌 선생은 씨알이라고 일컬었다”면서 “이 이름을 사용한 것은 현재 인도 사회의 가장 큰 사회 문제인 신분차별과 신분간 양극화를 공동생활과 대화를 통해 극복해 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인도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에게 인도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정신을 경험하는 교육의 장과 쉼터로도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2002년 4월 27일 조연현 기자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