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2010 부산일보 신춘문예-동시] 딱따구리가 꾸르르기 /장영복

문근영 2010. 1. 2. 14:42

[2010 신춘문예-동시] 딱따구리가 꾸르르기

내가 산에서 아아아, 메아리 부르던 날,

딱따구리 한 마리가 입속으로 날아들었다.

나는 딱따구리가 날아가지 못하게 얼른 입을 다물었다.
삽화=박나리 기자 nari@

딱따구리는 그날부터 내 뱃속에서 살았다.

힘들게 나무를 쪼아 벌레 잡을 필요도 없고

힘센 황조롱이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총 든 사냥꾼이 지나갈까봐 고개를 요리조리 살필 일도 없이 편히 살았다.

딱따구리는 딱다르르 소리 내는 것도 금방 잊었다.

어쩌다 소리를 낼 때가 있는데,

내가 미처 밥을 먹지 못하면 꾹꾸르르 꾸르르르 소리를 낸다.

딱따구리는, 밥을 달라는 건지 벌레를 잡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로 우는 꾸르르기가 되었다.



꾸르르기는 넷째 시간 끝나는 종이 울릴 무렵 꾹꾸르르 꾸르르르 운다.

나는 꾸르르기가 울면 하아 입을 벌리고 맛있는 밥을 먹여준다.

밥을 먹으면 꾸르르기는 금방 얌전해진다.

내가 졸려서 하품을 해도 날아가지 않는다.

내 뱃속에서 디룩디룩 살찐 새가 되어,

넷째 시간 종이 울릴 무렵 꾹꾸르르 꾸르르르 하고 운다.



지금 내 뱃속에는 딱따구리 아닌 꾸르르기가 살고 있다.




[당선소감] 딱따구리야 고마워

침착하게 전화를 받고 있다 생각했는데, 목소리는 떨리고 얼굴엔 때 아닌 비가 내렸습니다. 유리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따스한 아침이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읽기로 약속한 '그리스 신화'를 펼쳐놓고 몇 쪽이나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이야기에서 생각은 자꾸 미로에 빠졌습니다.

들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집을 나섰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상쾌했습니다. 청딱따구리가 먹이를 쪼고 있었습니다. '딱따구리야, 고마워.' 딱따구리에게 내 마음을 보냈습니다. 우리 동네 딱따구리는 가끔 내게 동시를 물어다 주었습니다. 나무도 들꽃도 나비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물어다 주는 동시를 빚어 아이들에게 선물하기에 나는 아직 부족하기만 합니다. "딱따구리야, 겨울잠 자는 나무들아 들꽃들아 곤충들아, 너의 말을 더 열심히 배울게."

제게 동시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게 해주신 여러 선생님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권오삼 선생님, 이상교 선생님, 문삼석 선생님, 그리고 오늘 영광스럽게도 제 이름을 불러주신 신현득 선생님, 훌륭한 가르침에 큰절 올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