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김원순
간수가 모조리 빠져나간 소금자루는 바위처럼 단단했다. 언젠가 세면장 바닥을 바르고 남은 시멘트 포대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던 것처럼. 국산 천일염 100%라고 쓰인 붉은 글씨가 없었더라면 그것이 소금자루인지 얼른 알아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오며가며 나는, 바윗덩이 같은 소금자루를 발로 툭툭 차거나 옆구리를 쿡쿡 쑤시곤 한다. 조금씩 부숴 놓아야지 배추나 생선을 절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틈 하나 없이 엉겨붙은 소금들이 은근히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세상이란 바닷물에 여태 부대끼며 살아왔지만 소금처럼 한데 엉겨서 살아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마 내 삶의 간수들이 나를 가둬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의 아픔을 보고도 외면하거나 건성으로 대했던 일이며, 남의 불행을 보면서 마냥 행복해 했던 일들이 모두 간수가 되었을 것이다. 무엇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나를 뒤돌아보기보다 남을 먼저 탓했으니, 내 삶의 간수는 얼마나 짜고 쓴 맛일까. 간수로 가득 찬 내 가슴은 텅빈 염전처럼 쓸쓸하기만 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소금자루는 부른 배를 더욱 내밀고선 마음껏 장난을 쳐보라고 한다. 나의 짓궂은 장난에도 싫은 내색이 없는 소금자루를 보고 있으면, 무심코 던진 남편의 말 한마디에 곧잘 상처를 입던 내 모습이 떠올라 씁쓸해진다. 소금자루처럼 간수를 버리고 나면 상처도 어느새 아물어 굳은살이 되는 것일까. 굳은살이 되지 못한 상처들이 내 몸 곳곳에 소금쩍처럼 피어 아직도 나를 아프게 하고 있다. 세월의 강이 얼마나 더 흘러야 소금자루처럼 단단해질까.
소금자루를 풀고서 가만히 소금을 들여다본다. 소금도 놀랐는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이 음습한 곳을 언제쯤이면 나갈 수 있느냐며 묻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나를 절여버릴 것만 같은 소금 한 알마다 열정과 맥박이 느껴진다. 어디라도 스며드는 소금을 따라 가보고 싶었다. 내 젖은 신발보다 낮은 곳에서 태어나 신발보다도 낮게 엎드린 채 살다가는 소금을 먹기가 왠지 망설여진다. 팍팍한 세상을 부드럽게 절여주기도 하고 알맞게 간도 맞춰 주다가 썩는 곳이면 어디라도 달려가는 소금 같은 사람이 생각나서 일까.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을 서슴없이 해내는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묵묵히 떠받치며 소리없이 끌고가리란 생각이 든다. 지금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는 나를 태우고서.
음습한 내 움막집에서 세 번째의 겨울을 맞이하는 소금자루다. 그 지루하고 막막한 시간을 건너는 동안 몸 속에 쌓인 찌꺼기들을 남김없이 버리고 또 버렸다. 내가 미처 버리지 못한 자만이나 이기심 같은 것들도 미련없이 버렸을 것이다. 버릴수록 투명해지는 한 알의 소금이 되기 위하여 모진 땡볕과 해풍도 견뎠을 것이다. 거대한 빙산이 녹고 남해의 멸치 떼가 동해로 몰려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제 길을 묵묵히 걸어 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상의 소금이 되기 위하여 무엇을 견뎠으며 사막화 되어가는 육지의 신음에 몇 번이나 귀 기울여 보았던가. 벽에 기대 선 소금자루가 거대한 바위산처럼 느껴졌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참 많은 소금을 먹었다. 내 몸 속엔 소금자루보다 많은 소금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수가 제대로 빠지지 않아서 장을 담거나 채소나 생선을 함부로 절이지 못하고 있다. 소금도 아니면서 소금인 채 살아온 내게 소금이 넌지시 말을 건넨다. 이제 삶의 간수를 조금씩 버리며 살아가라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한 알의 투명한 소금이 될 것이라고. 그래, 소금이 되지 못하면 소금밭이라도 되어야지. 모진 땡볕이면 어떻고 거친 해풍이면 또 어떤가. 너무 쉽게 소금을 만나고 버렸던 나를 아직도 버리지 않는 소금은 오늘도 나를 끊임없이 절여주고 있었다.
간수란, 소금이 공기 가운데 습기를 머금고 있다가 녹으면 분리되는 짜고 쓴 맛이 아닌가. 두부를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맛이기도 하다. 짜고 쓴 맛들이 그 무엇에게 소중한 맛이 되듯이, 내 삶의 간수도 누군가에게 귀한 맛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살면서 인생의 온갖 맛들을 보게 되는데, 간수처럼 짜고 쓴 맛들이 내 삶을 지탱해 준 것 같아서 지금도 가끔 그 맛이 그리워진다. 짜고 쓴 맛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거나 업신여겨선 안 될 일이다. 삶의 상처를 씻어내 새 살을 돋게하는 신비스럽고도 오묘한 맛이기 때문일까. 세상살이가 단맛만 있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간수이기도 하다. 소금이 바다의 눈물이라고 했지만. 요즘 들어 소금이 바다의 뼈란 생각이 자꾸만 든다. 몸의 물기란 물기는 모조리 버리고 난 뒤 남게 되는 하얀 결정체들. 그것은 마치 손발이 묶인 채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뼈만 남은 친정아버지 같아서 목이 메여온다.
그날 임종을 지켜보던 내게 앙상한 갈비뼈를 들썩이면서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던 아버지셨다. 드디어 한 많은 이승의 끝자락을 조용히 놓으신 아버지는 소금처럼 그렇게 떠나가셨다. 꽉 움켜잡으면 바스라질 것만 같던 아버지의 하얀 뼈를 안고 간수보다 진한 눈물을 쏟고 또 쏟았다. 나는, 소금처럼 하얀 시트 위에서 자는 듯 누워 계신 아버지의 가늘고도 긴 하얀 뼈들이 내 삶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것을, 소금처럼 나를 끊임없이 절여주고 있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이제 아버지의 손과 발은 더 이상 묶이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고 계실 것이다. 소금처럼 웃고 소금처럼 담담하던 아버지가 오늘 밤 내 꿈길을 찾아오실 것만 같아서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때로는 소금이 바다의 사리란 생각이 들곤 한다. '인생'이란 화두를 안고 살다가신 큰스님의 몸에서 나온 사리처럼, 내가 잠든 사이에도 '삶'이란 화두를 안고 고뇌하다 멍이 든 바다가 소리없이 쏟아내었기 때문이다. 그 사리들을 겁도 없이 먹으면서 내 속에도 저런 사리 하나쯤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염치없이 해본다. 꼭 장을 담지 않더라도 소금 한 자루쯤 곁에 두면 좋을 것이다. 흘러내리는 간수를 바라보면서 삶을 뒤돌아보기도 하고, 팍팍했던 일상을 다지거나 설익은 생각과 말과 행동들을 절여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질곡의 삶을 살다간 소금을 보며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어서다. 돌아오는 새 봄엔 꽁꽁 묶인 만삭의 소금자루를 풀어줄까 한다. 벌써부터 내년 장맛이 궁금해진다.
심사평 : 정목일 / 주제의 일관성·구성의 효율성 돋봬
올해 부산일보 신춘 수필부문 응모작품은 500편이 넘었다.
수필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삶과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나무의 겉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속에 품고 있는 목리문(木理紋)을 보는 일이다. 하나의 체험과 느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갖는 발견과 깨달음과 사상을 보는 일이다. 반짝거리는 솜씨보다도 마음과 인생의 경지를 엿보는 일이다.
종전보다 수필의 지평이 넓어지고 수준도 안정돼 있음을 느낀다. 젊은 층의 응모가 늘어난 것도, 주제와 소재의 폭이 확대된 일도 긍정적이다. 신인이라면 개성과 독자성을 보여야 한다. 기성의 틀과 형식을 깨고 자신만의 존재 양식과 빛깔과 향기를 보여야 마땅하다. 아직도 이런 패기와 실험정신이 미흡한 점이 아쉽다.
당선 작품 후보로 일생의 집중력과 경지가 실린 작품을 우선적으로 골라내었다. 적어도 일생의 무게와 사유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김원순의 '소금', 배단영의 '못'을 두고 정독을 거듭 한 끝에, '소금'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못'도 무게와 경지를 엿볼 수 있는 수작이지만, '소금'은 주제의 일관성, 구성의 효율성, 주제의 의미부여 등에 있어서 단연 두드러진 작품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정진을 당부한다
당선소감: 김원순
겨울이 되면 내 농장의 꽃들은 요염하리 만치 붉게 타오릅니다. 겨울이 없었다면 여느 꽃들처럼 푸른 잎으로 살아가야 할 칼라 화월과 불꽃 선인장들. 모진 외풍과 연탄가스에 시달렸지만 그토록 붉은 빛깔을 토해내고 있으니, 아마 올 봄도 찬란하게 펼쳐지리라 생각합니다. 온갖 역경을 묵묵히 견뎌온 꽃들을 보면서 유난히 길었던 내 삶의 겨울을 떠올려 봅니다. 그 가슴 저몄던 일들이, 그 피를 토했던 날들이 내 삶의 붉은 꽃잎이 되었음을, 삶의 환희가 어느 날 느닷없이 오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인내를 데리고 소리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겨울꽃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동백꽃보다 붉은 날들을 떨쳐버렸다면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한 그루의 수필을 가꿀 수 있었을까요. 수필이란 숲 속으로 걸어가게 해 준 내 삶의 겨울에게 오랜만에 악수를 청해 봅니다.
열병처럼 앓던 수필을 조금은 편히 안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부산일보사와 미흡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먼저 큰절을 올립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눈과 귀를 열고, 뼈와 살을 깎는 아픔으로 글을 쓸 것을 굳게 약속 드립니다. 나를 끝까지 믿어준 남편과, 변변찮은 어미의 글을 한결같이 도와준 아들 우성과 딸 수연이, 정말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김원순 / 1950년 경남 삼랑진 출생. 1992년 월간 '한국시' 신인상, 1994년 월간 '수필문학' 천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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