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2010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당선작

문근영 2010. 1. 2. 14:00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구석

기사등록 : 2009-12-31 09:41:12

아이와 숨바꼭질을 한다. 술래인 엄마를 뒤로하며 녀석이 은신처를 찾아 나선다. 이 방 저 방 네모난 미로 사이를 달려가다 드디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고양이마냥 살금살금 녀석의 꼬리를 밟아간다. 도대체 못 찾겠다고 엄살을 부리며 아들의 비밀 장소로 다가선다. 내 발소리가 가까워오자 녀석은 까르르르 웃음을 연발하면서 제가 먼저 장롱에서 뛰쳐나온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깔 숨이 넘어가도록 웃다가는 저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발끝에 4분 음표를 달고 팔랑거리며 앞서가는 아이를 다시 뒤쫓는다. 이번에는 소파와 벽 사이에 난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아이는 평소에도 구석을 참 좋아했다. 택배 박스의 작은 배를 타고 해외 유람을 하고, 장난감 바구니를 엎어 자동차를 만들고는 전국 일주를 즐긴다. 그림책을 병풍처럼 세워 아늑한 자신만의 집을 만드는가 하면, 빨랫바구니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강아지 흉내 내기도 즐긴다. 열 달 동안 태 안에서 느끼던 작고 좁은 구석이 주는 아늑함 때문인지, 아니면 제 어미의 구석 사랑을 물려받은 유전적 습성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사실 나도 아들만큼이나 구석을 즐기는 편이다. 아니, 즐긴다기보다는 구석에 길들여져 이제는 구석을 내 운명인 양 받아들이고 산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나는 아들처럼 뛰어놀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수줍음이 많아 혼자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며 조용히 놀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어디에서든 자연히 눈에 띄지 않아,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쩌다 동창생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면 지금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게다가 뭐 하나 빼어나게 잘하는 게 없다 보니 언제나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굳이 숨바꼭질을 즐기지 않아도 나는 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안전하게 숨어 있었다. 누군가의 인생에 잠시 스쳐가는 그림자였고,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는 관현악단 단원의 한 명에 불과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귀퉁이의 삶에 불평을 품어 보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내 운명이라 여겼다. 네모나고 각진 모서리에 닻을 내리고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며 조용히 지내는 것이 내 팔자려니 하면서 말이다.

   이런 구석 습관이 몸에 익어서인지 어딜 가나 나는 구석부터 찾는 버릇이 생겼다.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할 때도 늘 외진 곳에 자리를 잡고, 지하철을 타면 항상 출입구 쪽의 끝자리부터 눈길이 간다. 어느 모임에서건 앞서서 감투 쓰기를 꺼리고, 그냥 머리수나 채워주는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한다.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나가도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보다는 조금 외지고 한적한 곳을 찾는다. 가운데 자리의 수선스러움을 피하고 싶고, 구석이 주는 익숙함이 편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공원에서 아이와 숨바꼭질을 하다가 불현듯 또 다른 구석에 있는 나를 만났다. 헌책과 곡식들, 자질구레한 잡동사니가 가득한 다락방에 어린 내가 있다. 심심하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 늘 그곳에 들어가서 나는 혼자놀이를 즐겼다. 고모와 삼촌들이 보던 낡은 책을 보다가 심심하면 엎드리고 앉아 다락방에 난 작은 창을 통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들은 나를 볼 수 없지만 나는 세상을 훤히 볼 수 있었다. 비록 중심은 아니었지만 먼발치에 서서 전체적인 윤곽과 구도를 훑어 내리며, 구석자리였기에 가장 정확히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창밖을 내려다보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연극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구마당에는 고무줄놀이를 하는 친구들이 있고, 한창 힘겨루기를 벌이다 골목길 뒤로 퇴장하는 형과 동생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점차 무대가 어두워지면 해거름에 논둑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매일 똑같이 전개되는 일상의 연극에는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었다. 비중이 크든 작든 정해진 분량만큼의 대본으로 연기했고, 아무도 불평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다락방의 나를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구석자리의 나는 작은 풍경 하나 하나를 무심히 흘려버릴 수 없었다. 암표를 구해 다락방에서 훔쳐보는 삶의 연극이기에 더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유유상종이라고나 할까. 본연의 내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 혹은 애처로움과 동정의 심정 때문이었을까. 언제나 구석진 자리에 있을 때가 많았던 내가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도 어쩌면 구석 팔자의 운명 때문인지도 모른다. 크고 화려하게 빛나서 무대의 중심에 서기보다는 단역이나 조연으로 제 몫을 해내는 아이들과 지내는 일은 스스로를 연마하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들꽃들이 모여 숲을 이루며, 그들이 없으면 온전한 숲과 들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늘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아니, 그것은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이다. 또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자 구석 인생에 대해 스스로가 거는 최면이기도 하다.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이 존재하기에 세상은 모서리와 모서리가 맞닿으며 나름의 모양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닐까. 누구나 세상의 한가운데에 서고 싶어 하며, 뒷전으로 물러나 있는 것들보다는 항상 눈에 보이는 앞자리를 원한다. 구석구석의 작은 것들이 모여 세상의 큰 틀을 이루며, 때로는 외지고 후미진 구석이 세상을 그려내는 꼭짓점이 된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찬란하게 빛날 누군가의 삶을 위해 구석의 주춧돌이 필요하다면 나는 그 구석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구석에서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갈 것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구석을 사랑하며 인생을 꾸며 갈 것이다.

   아들 녀석이 다시 숨바꼭질을 하자고 손을 잡아 이끈다. 얼마나 구석이 좋았으면 양수가 터지고도 하루가 지나도록 나오지 않아 수술로 겨우 세상 구경을 한 아이다. 어느 구석을 그리도 찾아 헤매는지 모르겠다. 나도 따라 나선다, 숨바꼭질 같은 인생에서 내가 정착할 아름다운 구석을 찾아서.

 

 

<수필-허효남씨 당선소감> 따뜻한 수필로 세상의 구석 밝힐 것

기사등록 : 2009-12-31 09:41:12

한창 아이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에 당선이라는 말이 마치 환청처럼 들렸습니다. 실제로 있지 않는 일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환각 현상, 어쩌면 제게 수필의 세계는 바로 그런 세계였는지도 모릅니다.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는 저에게 글쓰기의 시작은 우연이었습니다. 하지만 낮도 밤도 잃어버리고 미아가 되어 헤매게 한 수필이라는 혼령은 필연인 듯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붓 가는 대로 그냥 마구 쓰는 게 수필인 줄 알고 무작정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기를 되풀이하는 일이 저에게는 하나의 수행이었습니다.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만 열린다고 했던가요. 보이지 않는 것들 가운데서 보이는 것을 찾고, 보이는 것 속에서 안 보이는 것을 찾아 헤맨 지 벌써 여섯 해가 되었습니다. 칠전팔기라는 말이 우스우리만큼 수없이 도전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라고 못 하려고 하는 오기가 소름 돋듯 돋았습니다. 그 집념이 오늘의 영광을 가져다준 것 같습니다.

   신변잡기가 아니라 생의 의미를 담아야 한다며 올바른 수필의 길로 이끌어 주신 대구 MBC 수필창작반의 곽흥렬 선생님께 가장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물심양면으로 힘이 되어 준 가족들과 청람수필 문우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꿈을 그리는 자는 그 꿈을 닮아간다고 했습니다. 멋모르고 수필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어린 새가 이제는 날개를 펼치며 비상을 하려고 합니다.

   부족한 글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쓰겠습니다. 따뜻한 수필로 이 세상의 구석을 밝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수필 부문 심사평 : 전정구 (전북대 교수 · 문학평론가)

   이번 신춘 문예에는 젊은이들보다는 나이가 든 응모자들이 많았다. 그들의 삶이 녹아든 내용 또한 담담하면서도 교훈적이며, 젊은이 못지않은 ‘문학에의 열정’이 담겨 있었다. 많은 응모자들이 나이를 잊어가며 밤잠을 설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수필은 남녀노소 모두를 관통하는 국민문학 내지는 시민문학의 자리를 차지한 듯하다. 평생교육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대학중심의 문학 강좌의 영향 때문인지 글쓰기의 수준이나 소재를 다루는 솜씨가 기성작가의 그것을 능가하는 수준작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문학을 지도해준 선생들의 첨삭(添削)이 이루어진 것들이 아닌가 의심이 가기도 한다. 신춘문예 심사자로서 당혹스런 대목이 여기에 있다. 모작(模作)이나 대리작(代理作)을 걸러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송구영신의 아쉬움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시기에는 우려와 불신보다는 믿음과 격려가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다음의 다섯 편을 골랐다. 김정남의<골목풍경>, 권윤홍의 <길>, 배단영의 <못>, 전옥선의 <무좀>, 허효남의 <구석> 등이다. 아쉬운 작품들이 몇 편 더 있었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각 작품들은 일상의 흔한 소재들을 가지고 ‘가볍지 않은 삶의 통찰’이나 ‘과거의 추억/기억들’을 결합하여 수필의 묘미를 음미하게 해준 수준작들이다. 이 작품들 중에서 허효남의 <구석>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허효남의 <구석>은 ‘술래인 엄마를 뒤로하며 은신처를 찾아나서는 아이와의 숨바꼭질’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유난히 구석을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자기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나/엄마의 직업선택도 그러한 자신의 성향과 관련된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구석, 혹은 모퉁이’라는 소재를 통해 세상을 깊이 있게 성찰하며 구석진 그곳을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읽어내는 솜씨는 일품이다.

   누구나 세상 한가운데에 서고 싶고, 뒷전에 밀려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이 존재하기에 모서리와 모서리가 맞닿으며 세상이 나름의 모양을 만들어 간다. 우리는 외지고 후미진 구석이 세상의 꼭지점이 된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그러나 찬란하게 빛날 누군가의 삶을 위해 구석의 주춧돌이 되려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하면서 남은 인생을 꾸려나가려는 응모자의 인생관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당선을 축하하며 좋은 수필로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밝혀주는 문학인으로 성장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