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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숨바꼭질을 한다. 술래인 엄마를 뒤로하며 녀석이 은신처를 찾아 나선다. 이 방 저 방 네모난 미로 사이를 달려가다 드디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고양이마냥 살금살금 녀석의 꼬리를 밟아간다. 도대체 못 찾겠다고 엄살을 부리며 아들의 비밀 장소로 다가선다. 내 발소리가 가까워오자 녀석은 까르르르 웃음을 연발하면서 제가 먼저 장롱에서 뛰쳐나온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깔 숨이 넘어가도록 웃다가는 저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발끝에 4분 음표를 달고 팔랑거리며 앞서가는 아이를 다시 뒤쫓는다. 이번에는 소파와 벽 사이에 난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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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아이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에 당선이라는 말이 마치 환청처럼 들렸습니다. 실제로 있지 않는 일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환각 현상, 어쩌면 제게 수필의 세계는 바로 그런 세계였는지도 모릅니다. |
▲ 수필 부문 심사평 : 전정구 (전북대 교수 · 문학평론가)
이번 신춘 문예에는 젊은이들보다는 나이가 든 응모자들이 많았다. 그들의 삶이 녹아든 내용 또한 담담하면서도 교훈적이며, 젊은이 못지않은 ‘문학에의 열정’이 담겨 있었다. 많은 응모자들이 나이를 잊어가며 밤잠을 설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수필은 남녀노소 모두를 관통하는 국민문학 내지는 시민문학의 자리를 차지한 듯하다. 평생교육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대학중심의 문학 강좌의 영향 때문인지 글쓰기의 수준이나 소재를 다루는 솜씨가 기성작가의 그것을 능가하는 수준작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문학을 지도해준 선생들의 첨삭(添削)이 이루어진 것들이 아닌가 의심이 가기도 한다. 신춘문예 심사자로서 당혹스런 대목이 여기에 있다. 모작(模作)이나 대리작(代理作)을 걸러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송구영신의 아쉬움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시기에는 우려와 불신보다는 믿음과 격려가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다음의 다섯 편을 골랐다. 김정남의<골목풍경>, 권윤홍의 <길>, 배단영의 <못>, 전옥선의 <무좀>, 허효남의 <구석> 등이다. 아쉬운 작품들이 몇 편 더 있었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각 작품들은 일상의 흔한 소재들을 가지고 ‘가볍지 않은 삶의 통찰’이나 ‘과거의 추억/기억들’을 결합하여 수필의 묘미를 음미하게 해준 수준작들이다. 이 작품들 중에서 허효남의 <구석>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허효남의 <구석>은 ‘술래인 엄마를 뒤로하며 은신처를 찾아나서는 아이와의 숨바꼭질’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유난히 구석을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자기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나/엄마의 직업선택도 그러한 자신의 성향과 관련된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구석, 혹은 모퉁이’라는 소재를 통해 세상을 깊이 있게 성찰하며 구석진 그곳을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읽어내는 솜씨는 일품이다.
누구나 세상 한가운데에 서고 싶고, 뒷전에 밀려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이 존재하기에 모서리와 모서리가 맞닿으며 세상이 나름의 모양을 만들어 간다. 우리는 외지고 후미진 구석이 세상의 꼭지점이 된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그러나 찬란하게 빛날 누군가의 삶을 위해 구석의 주춧돌이 되려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하면서 남은 인생을 꾸려나가려는 응모자의 인생관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당선을 축하하며 좋은 수필로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밝혀주는 문학인으로 성장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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